™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진정성 있는 강사라고요?

카잔 2016. 6. 4. 17:00

"직원 교육과 학습조직화로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사의 아픔까지 오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진정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2박 3일의 학습조직화 연수가 끝난 날에 한 참가자가 보내 주신 문자 메시지다. 샤워를 하는데, '진정성'이라는 단어와 '개인사의 아픔을 털어놓은 모습'에 대한 생각들이 물줄기와 함께 내 온 몸을 감쌌다. 나는 무엇을 오픈했던가? 진정성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기업의 HR 담당자들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면서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가족 사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닌 외삼촌, 어머니가 아닌 외숙모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었던 나는 중학생 때부터 외삼촌과 외숙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정사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설명하기 복잡해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해에 돌아가셨고, 외갓집으로 온 연유도 간단하지가 않다. 첫 만남이니만큼 청중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싶지,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2박 3일 워크숍 도중에 적절한 기회가 오면, 사실을 전하리라는 속셈도 있다. 그런 기회는 온다. 오지 않으면 만들기도 한다.


나에게 불리한 사실을 일부러 숨기는 게 아니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경력, 경험, 실력을 부풀리려고 애쓰는 강사들도 있기에 이해되는 접근이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과소평가 당하고 싶지도 않고, 실제의 나보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이 (선을 보는 자리라면 몰라도) 강연자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자신의 거품을 스스로 걷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종종 후배 강사들에게 지식인적 자의식을 강조하며 건네는 말이다. 이런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성공적인 강연은 청중과 강사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언젠가 내 글을 아껴 읽으시는 분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자신의 약점을 밝히는 일은 강사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너무 진솔하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겁니다."


그 분의 말씀이 옳은 경우도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진솔함 외에도 미덕이 많으니까. 한 개인이 모든 미덕을 추구할 수 없다면, 나는 진솔함을 추구하련다. 개인의 모든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청중과 강사 사이에서 지켜야 할 태도라 할, 지적 정직함과 자신에 대한 진실을 지켜가고 싶다. 이를 테면 : 제대로 아는 것만 전달하고 나의 경력이나 실력을 부풀리지 않기!


나의 프로필 학력 난에는 "경북대학교 생물자원기계공학부 수료"라는 말이 쓰여 있다. 굳이 "수료"라는 말을 붙여둔 까닭은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료'라고 써 두지 않으면, 대다수가 '졸업'이라고 오인할 가능성이 있으리라. "졸업이라고 쓰진 않더라도 수료라는 말은 빼자." 내게 여러 강연을 연결해 준 컨설턴트 친구의 말에, 나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학습조직화 연수에서도 나는 은근히 나의 학력을 내비쳤다.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사회학 부전공 학점도 모두 이수했지만, 제 본래의 전공 이수 학점을 채우지 못해 결국 졸업을 못했습니다." 이 말을 했던 시기가 3일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가자 분들이 나의 강연에 만족하시던 터였기에,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석박사 학위자가 수두룩한 업계에서 가방끈이 짧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말을 하면서도 '또 이러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찰스 핸디는 "학위란 계속해서 배우라는 일종의 증서, 즉 배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학위를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 학력위조가 지금처럼 만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핸디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귀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라는 것이다." 전달력을 타고난 강사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다.


내게는 석박사 학위는 고사하고 학사 학위도 없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움도 아니다. 학위 대신 실력으로 나를 드러내야 할 때가 때때로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진정 부끄러운 일은 학위 취득과 함께 배우는 태도를 잊어버리는 것이나 자신의 학위를 위조하여 세상을 속이는 일이리라. 누구나 몇몇 사람을 속이며 살겠지만, 세상을 속이며 사는 일은 범죄에 이르고 만다.


사람들은 종종 진정성과 도덕성을 착각한다. 도덕성은 진정성보다 크고 넓은 개념이다. 사전은 도덕성을 "도덕적 품성, 곧 선악의 견지에서 본 인격, 판단, 행위 따위에 대한 가치를 이른다"고 정의한다. 진정성은 거짓이 없이 참된 마음만으로 이를 수 있는 가치지만, 도덕성은 훨씬 높은 인격적 수양과 실천을 요한다. 이 글을 오롯이 나의 (도덕성이 아닌) 진정성으로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족 같은 설명을 덧붙여 보았다.


5월에 진행되었던 또 다른 교육에서도 '진정성'을 언급하며 메지시를 보내주신 참가자 분이 계셨다. "연지원 강사님은 진정성 있는 강사라고 느꼈습니다. 교육 주제보다는 인간적인 배움이 컸다는 느낌입니다." 나의 어떤 면에서 그리 느끼셨는지는 모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모른다"고 한다. 그럼 유능한 사람은? 그들 역시 자신의 유능함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덕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미덕을 모른다. (자기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자신의 미덕과 악덕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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