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어느 봄날의 반성과 결심

카잔 2016. 3. 18. 15:30

따뜻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실내 공기를 데워놓았다. 오후 세 시였다. 창문을 열었다. ‘와, 시원하다. 봄이 왔구나.’ 창밖 거리에는 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사람들의 옷이 밝아졌고 얇아졌다. 여인들은 봄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이제 곧 벚꽃이 피어날 것이다. 봄의 가객,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이 들려올 테고.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라는 멜로디가 귓가에 맴돈다.)


가을과 함께 봄은 놀기에 좋다. 나들이를 떠나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공부하거나 일하기는 싫은 계절이다. 봄 햇살을 맞으며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는 왜 이리 강연들을 많이 받았을까? 봄이 오는지 몰랐단 말인가.’ 물론 모르지 않았다. 봄과 가을이면 강연을 줄이고 여행과 놀이에 비중을 두는 삶의 패턴은 이미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봄을 즐기지 못할 만큼 바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여러 겹의 실수가 축적된 결과는 아니다. 세 가지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팔로워십 특강 수락, 2박 3일짜리 교육 신청, 학습조직화 워크숍 진행이 그것이다. 워크숍 진행 결정이 결정적이었다. 교육과정의 일부를 새롭게 개발해야 하고 관련 미팅을 서너 차례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2박 3일짜리 숙박 과정을 두어 차례 진행해야 한다. 


팔로워십 특강과 학습조직화 워크숍은 사전 준비와 얼마간의 공부를 요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다. 물론 강연을 수락한 이유는 있다. 꽤 분명한 이유들이다. 팔로워십 특강은 친한 지인의 부탁이었다. 이미 두 차례 강연을 한 회사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부담을 준다. “저는 아무래도 구체적인 실천거리보다는 원칙에 집중하고 인문적 느낌이 날 텐데요...” 준비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내가 하지 못할 영역을 알렸다. 


학습조직화 워크숍은 오랜만에 과정 개발도 하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워크숍을 진행하고 싶기도 했다. 세월은 강사로서의 일상도 바꿨다. 십년 전에는 숙박 과정의 워크숍도 많이 진행했지만, 지금은 특강이 좋다. 특강은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긴 시간 동안 체력 소모도 없다. 강연의 형식 뿐만 선호하는 내용도 달라졌다. 요즘엔 주로 인문학 수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강사가 아닌 선생이 되는 느낌이다. 


강사로서의 정체성을 잊어가는 것 같아 오랜만에 기업교육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다. 나는 글쟁이로 살고 싶지만 강사라는 업의 매력도 놓치고 싶지 않다. 다른 예술에 비유하자면, 글쓰기는 영화를 찍는 기분이 든다. 전하는 내용들을 밀실에 앉아 수정하고, 첨가하고 편집한다. 강의는 연극을 하는 느낌이다. 관객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며 생방송의 극적인 긴장감을 느끼며 진행한다. 서로 다른 기쁨을 안긴다. 


이번에 결정한 강연 일정들은 나의 바람에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도전들이기도 하다. 내 불만의 요지는 간단하다. ‘하필이면 왜 이 아름다운 ’봄‘에 이런저런 일정들을 잡았는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전화해서 이 모든 교육일정을 ’여름‘으로 조정하자고 말할까?’ 물론 우스갯소리다. 웃기지 않다는 사실로 나는 지금 웃고 있다. 원했던 일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는 울상을 짓는 중이다. 


다시 창밖을 본다. 봄이 들린다. 움츠렸던 몸이 펴지고 두터웠던 옷이 가벼워진 만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내게 다가온 일들을 즐길 방도를 고민한다. 햇살 따뜻한 봄날, 어느 멋진 카페에서 신들린 듯이 일해야겠다. 이왕이면 교외로 나가서 오가는 길에 잠시나마 봄꽃과 새싹을 만끽해야겠다. 실내에서는 몰입도를 높여 업무를 뚝딱뚝딱 끝내어 야외로 나갈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겠다. 기분이 한결 낫다.

'™ My Story > 아름다운 명랑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늦봄이니까  (2) 2016.04.26
우선순위를 사는 기쁨  (0) 2016.04.04
내 호흡이 멈춘 그 날엔  (6) 2016.03.15
걱정 말고 꿈을 꿉시다  (2) 2015.12.29
연말연시 & X-mas 이브  (2) 201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