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우선순위를 사는 기쁨

카잔 2016. 4. 4. 22:39

KTX 열차가 마산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4월 1일 금요일 오후 4시 50분, 열차가 멈추고서야 하던 일이 끝났다. 아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일을 멈추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잠시 내려놓을 뿐, 일은 끝이 없다. 내가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 때가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더라도 오래 전의 일이겠다.)

 

열차를 타고 오는 3시간 동안 하려던 일은 세 가지였다. 그 중 두 가지를 완료했다. 나머지 하나는 7시에 있을 인문학 특강 준비였다. 곧 시작될 강연 준비는 꽤나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중요한 약속은 내겐 강연 준비만큼 귀한 일이다.

 

5분 후, 마산역 앞에서 검은색 소나타에 올라탔다. 와우팀원 분께서 마중 나오셨다. 지난 주에는 와우수업으로 서울에서, 이번 주에는 글쓰기 수업으로 창원에서 만났지만 여전히 반갑다. "바쁘신 일은 좀 끝나셨어요?" 이번 주간 나의 상황을 아시는 안부 인사다. "아니요. 아직 안 끝났죠. 4월 3일이 워크숍 교재 마감일이니 일요일이 피크(peak)입니다."

 

"내일 (글쓰기 수업을) 좀 일찍 끝내야겠네요." 창원에서의 글쓰기 수업은 하루종일 진행된다. 실제 수업은 2시에 끝나지만, 오후 7~8시까지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는 수업의 연장이다.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이고, 웃음꽃이 피어나는 순간이 많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수업 날에 지장을 주고 싶진 않았다. "아닙니다. 여기 내려왔으니 일은 잠시 접어둬야죠." 

 

창원에 있는 동안에는 일을 잊었다. 내 영혼은 창원에 머물렀다. 일감 바구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면, 명태비빔국수와 들깨순두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숙소로 돌아올 때에는 나를 태워주신 형님과의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였다. 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강연을 진행한 순간만큼 행복했다.

 

강연 진행에 불만을 느꼈거나 청중들의 반응이 시시했던 게 아니다. 휴식 시간도 없이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 시간 동안 한 분도 강연장을 빠져 나가지 않으시고 젊은 강사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셨다. 강연이 끝난 후 일부 청중은 나를 찾아와 질문도 했고, 서명을 받아가신 분도 계셨다. 2시간 10분 동안 강연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열의와 시간을 가진 청중 열 분과 1시간 동안 카페에서 강연 후 대화를 가졌다. 호텔에 돌아오니 밤 11시 정각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6시 40분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시는 두 분과 조찬을 들기로 한 시각까지는 50분이 남았다. 샤워하고 내려오니 이미 로비에 와 계셨다. 우리는 편안하게 조식을 먹었다.

 

이번 수업은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에서 갖기로 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근사한 뷔페 식당에서 2시간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벚꽃 장소로 유명한 내수면생태공원과 경화역을 구경했다. 안민고개의 벚꽃터널도 환상이라는데, 주말에는 차량이 통제되어 가지 못했다. 우리는 마산역 앞에서 저녁 식사까지 함께 즐긴 후 7시 30분에 헤어졌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3시간 동안 줄곧 잠을 잤다. 토요일 밤 11시 55분에 도착했다. 이튿날 오전까지 피곤했다. 오후에는 워크숍 교재 작업에 모든 시간을 썼다. 작업실과 카페를 오가며 새벽 1시까지 일을 했다. 일이 진척되는 기쁨이 컸다. 그럼에도 내게 글쓰기와 강연을 포함한 모든 일은 내게 2순위다. 인생이 1순위다.

 

최근 어느 글에서 "가장 중요한 일(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에의 몰입은 제2의 천성이 되었다"고 썼었다. 가까운 와우팀원 한 명이 "제2의 천성, 정말 그런 것 같아요"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기분이 좋았다. 인정을 받아서인지, 집중력이 시시했던 내가 스스로를 뛰어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더욱 몰입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천재성을 내 인생에 쏟아 부었다. 내 작품에는 고작 재주만을 부렸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내게는 천재성이 없지만,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먼 훗날 내가 자서전이라는 글을 쓴다면, 그 글을 관통하는 말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는 열정을 내 인생에 쏟아 부었다. 글쓰기에는 잠깐씩의 노력을 깃들였을 뿐이다."  

 

나는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만큼 글을 많이 쓰지도 못하고, 바라는 수준만큼 글을 다듬지도 못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집필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지나치게 커지면 삶에 대한 불만도 커지겠지만, 글쓰기를 놓치며 살지도 않으니 아직은 내 삶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 곁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사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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