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억울한 볼 판정을 대하는 법

카잔 2016. 6. 11. 10:49

찬스였다. 5회초 2사 1, 3루, 김현수가 타점을 올릴 기회를 안고 타석에 들어섰다. 직전 경기까지 김현수는 득점권 타석에서 14타수 4안타의 성적을 보였다. 1, 3루 상황에서는 2타수 무안타였다. "오늘 그 기록을 깨주었으면 좋겠네요." 해설자의 희망 어린 말이다. 상대팀 에스트라다는 4회까지 무실점 투구로 호투 중이다. 3구까지 1 스트라이크, 2 볼을 던졌다. 4구는 배팅 찬스였다. 6월 11일 볼티모어 대 토론토, 중반 승부처다.

에스트라다의 네번째 공이 들어왔지만 김현수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볼이라 판단했으리라. 피칭 그래프에도 볼로 찍혔다. 해설자도 볼로 보았지만, 심판은 달랐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되었다. 공 한 개 정도가 빗나간 것으로 보였으니 무리한 판단은 아니었지만 살짝 억울하긴 했다. 5구째는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지는 바깥쪽 유인구였다. 김현수는 아쉽게 어정쩡하게 헛스윙하고 말았다. 찬스는 이렇게 무산됐다.

김현수를 십분 이해했다. 직전 볼로 보였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이 되었으니, 선구안을 심판에 맞게 순간적으로 교정해야 했다. 5구는 4구와 비슷한 궤적으로 오다가 떨어졌다. 4구자 볼로 판정되었더라면 김현수가 속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심판 스트라이크 판정이 속절없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다. (아직까지는)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대한 얼마간의 억울함까지도 야구의 일부라는 말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심판의 편파 판정을 욕하는 댓글 아래에는 합리적인 팩트 체크의 댓글도 달렸다. "오승환이 잡아낸 탈삼진 중에는 심판이 볼을 스트라이크로 잡아 준 덕분에 얻어낸 것도 많습니다." 소수의 불합리한 차별도 존재하겠지만, 차별보다는 '인간(사)'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는 쪽이 합리적이다. 최소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심판도 인간이다. 판단 실수를 더러 한다는 말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2014년까지 야구계에 통용되던 신념이었다. 심판이 확연하게 오심을 내렸을 때에, 경기 중계진들이 시청자들을 달래는 최적의 한 마디이기도 했다. 최소한 나는 그 말로 억울함을 삭였다. 이 말은 인간의 한계를 한껏 인정하되 공정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나마 합리적인 처사였다. 하지만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오심을 접하면, 패배 팀을 향한 억울함과 더 나은 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강해졌다.  

이제는 세이프와 아웃에 대한 오심은 사라졌다. 억울함과 아쉬움도 덩달아 없어졌다. 비디오판독을 통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심이라도 판단될 경우, 팀은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심판들이 모여 비디오를 판독하는 팀의 결과를 전달받아 오심을 조정한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 후반기부터 TV 중계화면을 통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많은 팬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고마운 제도다.

다만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여전히 심판의 고유권이다. 향후 이것마저 기계가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된 채로 심판만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다. 심판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 실수는 얼마간의 억울함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두번째 생각거리가 존재한다. 야구 선수는 이 억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잘 다룬다면, 얼마간은 인생살이에도 도움이 되리라.)

최근 시애틀 소속의 이대호는 심판 판정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삼진 아웃 이후 덕아웃으로 들어서는 이대호를 감독이 "누가 봐도 볼이었다"라고 달래어 줄 만큼 억울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응원하는 선수의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히 여기는 팬으로서 억울했다. 하지만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심판을 향한 강한 아쉬움(과 약한 불만)이 느껴져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관련영상 클릭> 추신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출루율을 보여주는 추신수의 선구안은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2014년 한동안 추신수 타석에서의 볼 판정에 대한 아쉬운 장면이 많았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판의 아쉬운 판정이 더욱 지속된 데에는 추신수가 인터뷰에서 강하게 어필한 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MBC스포츠플러스 김형준 해설위원의 말이다. 추는 심판 판정에 불만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다. 해설위원도 이를 알리라.

과거엔 없었더라도 지금 불만이 많다면 과거지사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나는 추신수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그렇기에 그의 억울함을 십분 이해하고, 타석 하나마다 미세하게 변동하는 기록을 주시한다.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짜증나는 이유다. 팬들은 부진만큼이나 불공정한 판정에 속이 상한다. 존경하고 응원하는 동시에 그에게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멘탈도 기대한다. 최고에겐 (때때로 불합리한) 견제가 들어오는 법이니까.

추신수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탁월한 실력 뿐만 아니라 억울한 판정을 견뎌내는 훌륭한 인내도 한몫 했으리라. 그랬던 그가 오죽했으면 항의했을까. 이런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가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더 높은 기록을 쌓아가기 위해 모두가 억울해하는 상황에서도 본인만큼은 예전처럼 묵묵히 견뎌주기를 바란다. 심판의 오심까지 품어가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메이저리그 최고의 출루기록을 경신, 또 경신 할 테니까.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은 불확실성, 불가사의, 의혹 속에서도 존재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썼다. 그러한 능력을 "Negative Capability"이라고 표현했다. 불리하고 부정적인 여건을 헤쳐나가는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인생은 때때로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시련, 고통, 실패, 억울함을 안긴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Negative Capability다. (나는 부정성 수용력으로 번역하련다.)

Negative Capability를 야구판으로 가져오면 '오심 수용력'이라는 용어를 만들 수 있으리라. 이 능력이 야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슬럼프를 예방하고 온전한 실력 발휘를 위한 필수품이라는 생각은 든다. 오심 수용력이 부족하여 빚어지는 아쉬운 상황은 많다. 일례로 2015년 가을, 한화의 에스밀 로저스가 눈부신 경기를 이어나가다가 한 이닝 3실점을 하면서 기록에 금이 간 것도 오심 수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형준 위원은 심판 판정에 대한 강정호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강정호가 볼 판정에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2년차다. 2014년 당시 추신수는 10년차다. 아직까지는 강정호가 추신수보다 오심 수용력이 뛰어난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1년차인 이대호가 보인 이번 인터뷰는 아쉽다. 부디 이대호의 말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 심판진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을 잡아먹는 줄 알면서도 매일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소식을 챙겨 본다. 그들을 응원한다. 이대호의 억울한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도 공감한다. 100타석에 들어섰다고 했을 때, 안타 1개 차이로 3할과 2할 9푼이 갈리니까 그들의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하다. 하지만 인생에 억울한 일들이 존재하듯, 아직까지는 오심이 존재한다. 최고의 선수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억울함을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표현해야 한다. 오늘 경기 이후, 김현수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기를!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오심 수용력을 위하여!
(그리고 최근 들어 부쩍 낮아진 나의 부정성 수용력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