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혼자 살면 즐거울까

카잔 2016. 8. 29. 22:19


혼자 사는 즐거움이라고?! 이것은 달콤한 환영(幻影)이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 또렷한 행복이기도 하다.


당신이 젊다면, 다시 말해 20대라면(30대여도 괜찮다) 그리고 혼자 살기를 꿈꾸다면, 그 즐거움을 향유해 보기를 권한다. 20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놓쳤던 자유와 인식하지도 못했던 성장의 기회를 맛볼 수 있으리라. 내가 한 가지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일러두고 싶다. 자기경영에 능숙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깨쳐야 혼자 사는 즐거움이 극대화된다! 여기서의 일이란, 집안 일을 말함이다. 요리와 설겆이에 익숙할수록 건강해지고, 청소와 정리정돈에 시간을 써야 청결해진다. 빨래를 미루지 말아야 옷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혼자 살면 그간의 엄마 손길을 체험하게 된다. 집안이 정갈하고, 내가 입을 옷이 옷장에 개켜져 있고, 냉장고의 먹을거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집에서 살았다면, 엄마의 부지런함 덕분이다. 모든 엄마가 정리정돈과 집안 일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엄마의 손길을 생각할 수 있다. 방 하나에 한 달만 살아도, 집안 일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되니까. 엄마의 잔소리는 이 모든 집안 일 뒤에 숨겨진, 애정 어린 넋두리다. 가족에게 작은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거나 그저 들어주기만 해 달라는 일상적 푸념이거나.


자기경영을 어떡할까? 대학생이든, 사회 초년생이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100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인격의 핵심은 성실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악마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유혹을 받는 것도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인간관계도 아닌 업무 얘기에 왠 인격 타령이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업무의 핵심은 성과 달성이고, 성과 달성의 여부는 능력이 아닌 인격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잡스나 저커버그 류의) 창의적 능력과 탁월한 혜안을 갖춘 게 아니라면, 업무 성과는 인격이나 태도에서 상당 부분 좌우된다.


자기경영에서 삐걱대고 있다면 성실부터 갖춰라.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되게 행함이다. 기계를 통해 전해지는 개그 프로그램 하나도 정성으로 시청하면 더 웃게 된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게 태반인인생지사를 정성스럽고 참되게 행한다면 무언가 결실이 있지 않겠는가! 내가 성실의 화신처럼 생각하는 분을 소개한다.


그녀는 대학 교수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면 그네들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다. 학회에라도 참석하면, 일정 자체가 무리하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꼬박 일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좁은 좌석에 작은 테이블을 펼쳐,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마음을 써 가며 열 시간 가까이 쪼그려 일한다. 일상을 놓치거나 사람 도리에 무심하고 싶지도 않은 그녀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죽을 듯 무리하기도 했다. 독일의 시설 좋은 연구소에서 공부할 때면, 빚진 자의 심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 2011년 유서 깊은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성실한 학문 활동으로 괴테금메달을 수상한 전영애 교수님 얘기다. 그분이라서 그렇지, 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실하셔서 지금의 자리에 가 계신다고 생각한다.


성실한 자기경영과 집안 일하는 즐거움을 깨친 젊은이들은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행복에 무척 큰 영향을 주고,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이나 필연적인 상실의 고통이 찾아오긴 하겠으나,  이것은 자기경영과 집안 일보다 통제하기 훨씬 힘든 영역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헤쳐나가는 태도는 학창시절 시험을 볼 때나 어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갈 때나 유효한 삶의 기술이다.


문제는 마흔 이후부터 시작된다. 물론 마흔은 상징적인 숫자다. 자기 인생에 대한 자의식, 독립의 정도(행복을 위해서는 정신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독립 없이는 혼자 사는 삶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하는(버티는, 화해하는, 차단하는) 요령, 일과 대인관계에서의 만족감, 타인에게 의존하는 기질인가의 여부 등에 따라 숫자는 서른 다섯이 되기도 하리라. 하지만 30대를 중년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점차 60대도 포함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중년이란 40~50대다. 카프카가 쓴 <독신자의 불행> 역시도 20~30대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카프카는 중년의 독신을 괴로움으로 표현했다.


"독신자로 남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로 생각된다. 저녁 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에는 나이 든 사람으로서 위신을 지켜가며 한데 끼워줄 것을 어렵게 청해야 하고, 몸이 아프게 되면 자신의 침대 한구석에서 몇 주일씩이라도 텅 빈 방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나 대문 앞에서 작별을 해야 할 뿐 한 번도 자신의 부인과 나란히 층계를 오를 수 없고, 늘 한 손에는 자신의 저녁거리를 들고 집으로 와야 하고, 낯선 아이들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아야 하지만 "나에겐 아이들이 하나도 없구나" 하고 줄곧 되풀이해서도 안 되며, 젊은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두 독신자들을 따라 외모와 태도를 꾸며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이주동 역)


생생한 실제다. 나는 카프카의 말에 "혼기를 넘어가는 독신자는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느낌도 안고 살아야 한다"는 한 마디도 덧붙이고 싶다. 중년 이후로도 혼자 사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이러한 현실부터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삶의 지혜와 기술을 터득해 나가야 한다. 세 가지가 관건이지 싶다. 일에서의 만족감, 덕불고의 태도(덕은 외롭지 않다), 꾸준한 건강 관리! 성실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인의(仁義)로 사람들을 대하며, 건강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면, 그나마 혼자 사는 즐거움을 누릴 준비물을 갖춘 셈이 되리라.


노년의 경우는 좀 더 절절해진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으면 행복한 노년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절감할 터인데, 노화와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젊은이들에겐 너무 충격적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 정영목 교수의 유려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노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암울하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장을 소개함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다.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물론 신체적 통증마저 사라지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스캇 펙 박사의 말을 믿는다.


앞서 소개한 김형석 교수는 인터뷰 기사 <97세 현자와의 대화>(인터뷰어 김지수)에서, 노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노 교수는 이리 답하셨다. 


“고독이지요. 90이 넘으면 친구가 사라집니다. 아내도 가버리지요. 세상이 텅 빈 것 같아요. 어머니와 아내가 살아있을 때 각각 이쪽 방 저 쪽방에 몸져 각각 누워있었는데, 어머니가 눈을 감기 전에 그러시더군요. “나도 가고 네 처도 가면 집이 텅 빌텐데 네가 빈 집에서 어찌할꼬?” 은근히 재혼을 권유하셨던 것인데, 그때는 몰랐어요. 젊을 적에 집은 어머니고, 나이 들어 집은 아내인데, 다 떠나고 나니, LA에 딸 집에 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도 '서둘러 가면 뭐하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고독을 이기기 위해 80이 넘은 제자들과 만납니다(웃음). 함께 ‘인천상륙작전'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지요. 고마운 건 교육자는 원래 씨를 뿌리고 그 덕은 사회가 보는 것인데, 오래 살다 보니, 그 열매 맺은 것을 제가 보고 누린다는 거지요.”


답변에는 현실도 언급되었고, 이상도 제시되었다. 외로움과 무상함은 현실이고, 제자들과의 교우는 이상이다. 배우자마저 세상을 떠난 노년에 함께 즐길 벗이 있고, 함께 대화할 동학이 있음은 큰 위로다. 누구나 혼자서 삶을 찾아온다. 삶을 떠날 때에도 혼자다. 기실 가정을 꾸려 함께 살아도 혼자 살아야 할 영역이 있기 마련이니, '홀로' 행한다는 것은 삶의 실존이다. 제목에서 말한 '혼자 사는 즐거움'은 인간 존재의 고독한 실존 고찰이 아닌, 더불어 살지 않는 '1인 가구로서의 삶이 즐거울 수 있느냐'는 물음에서 나왔다. '젊은 때에는 충분히 좋다, 중년 이후로는 어렵지만 가능하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어렵다고 해서, 그 과정이 고통으로만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즐거움을 누리려면 불필요한 환상은 깨뜨려야 하고, 얼마간 힘겹더라도 의미 있는 길이라면 가야 한다. 집안 일은 여름날 잡초처럼 날마다 생겨나고, 건강 관리는 단 한 번 땜질로 해결되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매일 출근을 하고, 프리랜서들도 날마다 일을 해야 밥벌이 걱정을 던다. 이것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실존들인가? 그렇지 않다. 카뮈가 부조리한 실존을 넘어선 인간상으로 제시한 '반항인'은, "YES"와 "NO"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다. 카뮈 식으로 답하자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데, 행복이 충분히 가능하다.


카뮈의 말처럼,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한 삶을 영위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바위를 굴려 올린 후 다시 굴러떨어지기 전의 찰나에 자신의 노동을 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시지프스! 끊임없이 바위를 굴러 올리면서도 질리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그 속에도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는 일! 힘겨움, 모순, 부조리에 절망하지 않고 그에 맞서 힘차게 살아보기! 즐길거리(일이든 취미)를 찾고, 덕을 추구하면서 살며, 건강 유지를 위해 노력하면서 매일 성실을 조각하기! 인내든, 용기든, 받아들임이든, 삶의 건설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불러들여 정성껏 실천하기! 일상의 변혁이요, 영혼이 성장하는 모습들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개념은 사람을 차별한다. 누군가에겐 신기루이고, 누군가에겐 실제다. 어떤 이는 혼자 살아도 그다지 즐겁지 않고, 어떤 이는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리라는 말이다. (그 만끽도 유효기간이 있긴 하지만.) 한 개인에게도 혼자 사는 삶은 시계추처럼 괴로움과 즐거움을 오간다. 어떨 때에는 혼자 있음이 충만한 기쁨을 주다가, 때로는 지극한 외로움을 안긴다. 양면성이야말로 인생의 속살이다. 양면성의 어두운 쪽에 겁먹거나 좌절하지 않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도전이 진짜 삶이다. 혼자 살든, 가족과 함께 살든, 양면성에 맞닥뜨릴 것이다. 누구에게나 진짜 삶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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