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문학비평가 이명원 선생의 책 제목이다. 마음이 엄청 짜다는 말인가, 무슨 의미지? 도서관과는 어떤 관계고? 의문은 <내 안의 소금밭>이라는 글을 읽으며 풀렸다. 두 페이지짜리 짧은 글(책에 실린 상당수의 글이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심'이라는 단어와 글의 말미에 "마음이 소금밭"인데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고통으로 속이 꽉 찬 개그맨이 사람을 웃겨야 된다는 아이러니"에 빗댄 걸 보면, 고통스러운 내면을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서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안의 소금밭을 부지런히 갈기 위해서라도, 그 짜디짠 인생에 정직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허균의 말을 약간 비틀어 말하자면, 붓두껍을 닫는다고 문인이 죽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글을 쓸 당시에 이 걸출할 비평가의 개인사는 고통이 짙게 드리웠나 보다고 생각했다.그는 광대놀음 같은 글쓰기를 잠시 쉬고 싶었나 보다. 고통에 집중하고, 자기 인생에 정직하기 위해서라고 밝히면서. 그런데도 책은 계속 읽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가지 않던 도서관에 오랜만에 들른 까닭도 기분이 내키거나,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소금밭'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독서는 그에게 일종의 안정제였던 것!


염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소금밭 비유는 제대로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만약 '마음이 소금밭이어서(또는 이기 때문에)'라고 표현했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의미 전달도 명확해진다. 반면 덜 문학적이 된다. "마음이 소금밭인데"는 다양한 해석을 부른다. '소금밭'이라는 현실과 도서관에 간 사건의 연관성을 다양하게 모색하게 된다. 소금밭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다, 라는 의지의 발현으로까지 해석하면 과장일까.


말이 조금 엇나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책을 읽는 행위가 독자에게 안심, 치유,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독서할 때, 그의 내면을 단정짓기가 어려워진다. 어떤 이는 한가로운 시간을 맞이하여 여가 생활이나 무위도식한 취미로 책을 읽겠지만, 누군가는 절절한 자기 극복의 의지로 책을 집어들었거나 또는 처절한 자기 위로의 일환으로 책을 읽기도 할 테니까.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선생의 말을 보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가 하면, 독서가 가진 위로의 힘을 주장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파서요. 책을 읽으면 좀 덜 아프거든요. 이는 나만의 이유가 아니다. 누구나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상할 때 혹은 고통으로 인한 죽음 직전에도 책을 읽으면 위로 받는다. 기분이 전환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픈 상황에서 딴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덜 아프게 된다."


정말 누구나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이들도 그러한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나는 늘 생애 처음으로 독서하는 이들이 첫 독서 경험을 통해 영감, 위로, 에너지를 얻으려면 적합한 책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비독서인들이 삶의 괴로움을 만났을 때 자신에게 도움 될 책을 만날 확률이 늘 책을 읽어온 독서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적합한 한 권을 만나기야 한다면, 독서의 위로 능력을 의심치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서로 다른 것에서 위로를 얻는다. 누군가는 옷을 사면서 고통을 경감시키고, 누군가는 여행으로 자신을 달랜다. 어떤 학생은 음악을 끄고 공부하고, 어떤 학생은 공부할 때마다 음악을 켠다. 이러한 인간의 다양성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삶이 힘들 때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어슬렁거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럴 마음이 아니다, 나는 지금 힘들다'고 말한다면, 나도 이렇게 말할 것만 가다. 저도 삶이 잘 굴러가서가 아니라, 힘들고 아파서 책을 읽습니다, 라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밥 한 술을 입에 넣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삶이 힘들 때, 아픔을 견디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면서 힘을 얻는다. 책 한 권으로 문제를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문제를 가진 채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있다. 책이 상처가 없던 원래의 삶으로 되돌려주지는 못하지만, 상처를 싸매는 법과 상처를 안고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을 수는 있다. 문학비평계의 황제들을 비판한 도서 『타는 혀』로 의미 깊은 논쟁을 촉발시켰던 걸출한 비평가도, 삶의 방식에 관한 주관이 또렷한 여성학 연구자도, 안심을 얻거나 아파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위로다.


덧#1. 독서를 해 왔다면, 자신을 위로할 만한 책을 찾아낼 촉이 있으리라. 그러니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을 위한 글을 덧붙인다. 첫 책에서 기대할 만한 위로를 얻지 못하더라도 "첫 술에 배부르랴"는 속담을 기억하면서 두번째, 세번째 책까지는 읽어 가시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을 주변의 독서가나 전문가로부터 추천 받으면 그나마 선택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덧#2. 이명원 선생은 소금밭이어서 당분간 글쓰기를 쉬었다. 글쓰기가 위로를 주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고통스러울 때, 매문이나 기고를 위한 글쓰기를 하기는 힘들다. 치유나 성찰을 위한 일기쓰기처럼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독서만큼이나 안심과 위로를 준다. 어떠한 고통이냐에 따라 글쓰기를 잠시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으리라. (개인적인 경우겠지만, 나는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유실했을 때 한 달 이상 동안 노트북을 켜지 않고 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