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핸드폰에게 빼앗겨 온 것

카잔 2016. 12. 3. 19:34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핸드폰은 책상 위에 놓아둔 채였다. 주말이니 전화 올 일도 없었다(기실 들고다닌다고 해도 놓치기 일쑤인데 뭘). 저녁 약속이 하나 있었으니, 확인차 사전 연락을 주고받을 가능성만이 존재했다. 이것도 걱정할 바가 아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 때였다. 부재중 메시지가 있으니, 다녀와서 연락해도 될 터였다. 사소한 의사소통의 실수가 서운함이나 오해로 번질 염려도 없는 친한 관계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왔다. 간간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지그시 감았던 걸 제외하면, 책의 내용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내용이 가슴과 영혼을 울렸던 탓이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핸드폰이 없었다는 사실도 꽤나 도움이 된 것 같다. 돌아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한 시간 사이에 나를 찾은 메시지, 카카오톡, 메일은 없었다. 반가운(평일이었더라면 카톡 하나쯤은 왔을 테고, 그러면 들지 않았을) 의문이 들었다.


'핸드폰을 가져갔더라면, 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주의를 빼앗겼을까?'


책의 저자인 '오쇼'가 나를 장악하긴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두 번은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연락 온 데가 없으니) '그 확인은 헛걸음일 텐데'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락이 왔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메일을 읽거나 카카오톡에 회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핸드폰에 그나마 덜 중독된 편이라 생각했지만, 안주하거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지만,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대니얼 골먼을 『포커스』에서 미국인들의 중독 현상을 전한다. "문자가 오면 그 순간을 놓치게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게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미 중독이 되어버렸어요." "책을 한 번에 두 쪽 이상을 읽지 못하겠어요. 새로운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어요."


전언은 청소년들의 얘기가 아니다. 한 출판사의 임원과 대학 교수의 말이다. "정보의 풍요는 주의의 결핍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1978년(책은 1977년이라도 잘못 전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골먼은 "집중력의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의 모든 것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믿을 만한 증거로 밝힌다. 이러한 증거를 읽지 않더라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집중력은 이제,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든 희소한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해 준 덕분에 나는 집중력을 연마하기 위한 노력을 간헐적으로 해 왔었다. 요즘엔 조금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집중력을 업무와만 연계하지만, 사실 집중력 없이는 교감, 공감, 친밀함도 없다).


다시 한 번 집중력의 중요성을 의식할 수 있어서, 나는 지금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