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이런 건 필요 없는데…

카잔 2017. 1. 17. 17:50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친구는 두 달 동안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로 요양을 해야 했다.
세월의 자비와 인간의 위대한 치유력에 힘입어
꼭 두 달째 되는 날에 녀석은 나와 함께 외출했다.


수술 후 첫 외출이었다. 친구는 감격스러워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친구는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선물을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그 일을 오늘 하잔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들어섰다. 볼펜과 만년필을 파는
몽블랑, 파버카스텔, 파카 매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몽블랑까지는 못 사주지만, 괜찮은 거 골라보자.”
녀석은 나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펜들을 살폈다.


오늘 꼭 사야 한다며 곧 죽을 사람처럼 구는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친구는 단호했다.
“니가 오랫동안 써야 하니깐 마음에 드는 걸로 잘 골라줘.”
녀석의 진지함에 마음을 바꿔 먹고 찬찬히 살폈다.


친구가 더 적극적이었다. 내게 몇 개의 후보군을 제시했다.
하나의 펜으로 합의했다. 내겐 몽블랑보다 어울렸다.
“마음에 들어?” 친구의 물음에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애 최고의 펜을 소유하게 된 날이었다.


이것이 친구의 마지막 선물이다. ‘이런 건 필요 없는데….’
녀석은 그로부터 6개월하고도 보름 후에 세상을 떠났다.
펜은 헝겊에 덮여 늘 책상 모니터 옆 펜 꽂이에서 쉬고 있다.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2년 반을 그렇게 지냈다.


오늘처럼 녀석과의 추억이 그리울 때면 펜을 꺼내든다.
친구는 말했다. “새 책을 출간하면 이걸로 사인하면 되겠다.”
모를 일이지만 내겐 “사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로 들렸다.
눈물이 흐른다. 이런 날은 속수무책이다. 하염없다.


친구야, 올해는 꼭 출간해서 네가 준 선물로 사인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