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갓난아기들처럼 무럭무럭

카잔 2017. 5. 24. 12:07

재식아,

 

안부 연락 고마워. 형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마음 터놓고 지낸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 슬픔이요 고통임을 또 한 번 경험하면서 인생의 진실, 나의 강인함과 연약함 그리고 삶의 기쁨과 허망을 느끼는 요즘이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진실), 이 정도면 꿋꿋하고 의연한 편이 아닐까(강인함), 나는 왜 이리도 슬프고 허망한 걸까(연약함), 당연하게 느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구나(기쁨의 발견), 추구했던 가치들이 무너지고 흩어졌구나(허망의 침입). 이러한 생각과 감정들이 내면을 떠돈다.

 

얼마간의 슬픔과 고통을 각오했지만, 조금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네.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작은 일에도 눈물이 핑 돈다. 5월 23일은 노 대통령님의 영상을 보고, 할 일들은 손에서 놓은 채로 울적하게 보냈네. 오늘은 내 말에 풀이 죽은 척하는 친구의 장난에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네. 여느 때 같으면 장난으로 맞받아쳤을 텐데….

 

잠시 모든 일을 접고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통장 잔고에 현금 1천만 원이 있다면 두 달은 그냥 쉬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작은 종잣돈조차 없음은 현재를 즐기며 살겠다는 가치관의 맹점이겠지. 무엇이든 양극적 사유가 중요한데 경제관념은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을,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하고 있다. 그래도 내 형편은 예전의 엄마보다는 나은데, 엄마에겐 정말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겠더라.

 

일상을 마냥 회색빛으로 칠하고 싶진 않아서 나름의 노력도 한다. 노력의 이름이랄까 : 스스로의 삶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밝은 기운을 창조하고 싶어서 행복해지는 일들을 수시로 시도하는 거야. 슬픔을 억누르는 건 아니야. 억지는 부작용을 부르잖우.

 

무얼 하냐고? 니체 읽기(요즘 내 삶의 활력소다, 카잔차키스 읽기도 마찬가지고), 재즈 스탠다드 음미하기(재즈 소양을 좀 더 높이고 싶어서), 모차르트 감상하기(내면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아직 떠나보지는 못했지만 여행도 시도할 테고, 곧 글쓰기도 재개하려고. 사실 글쓰기 슬럼프인 셈이고, 그 슬럼프가 자칫 길어질까 저어되네.


이틀 후에는 동영상 강연 촬영이 있어. 중요한 일인데, 준비를 시작조차 못했네. 5월 초의 진척 상황 그대로다. 너에게 소식을 전하고 나면 오늘과 내일을 촬영 준비에 매진해야겠다. 그럴 수 있어야 할 텐데…. 아니지, 단호하게 결심해야지!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준비할게! 정말 그러고야 말겠어.

 

다음 주에는 세 개의 강연이 있다. 그 일정들을 모두 거뜬히 소화해내고 싶다. 선전하고 선방해야지! 돌아보니, 너와 함께했던 특강은 나 스스로가 좀 실망스럽더라. 그보다는 많이 잘해야지, 하고 결심한다. 지금 받아든 교육 외에는 당분간 기업교육은 쉴 생각이다. 스터디 모임, 전공 공부(인문주의), 와우 수업에 집중하려고.

 

애도의 기간은 절호의 공부 기회임을 안다. 물론 내가 힘을 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만 감수성의 촉이 민감해져 있고, 사유의 날이 첨예해져 있거든. 지금 읽고 있는 책에는 “곤혹이 사유의 왕국을 통치한다(탕누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는 표현이 있더라. 뒤집어 생각하면, 행복은 무사유를 조장한다 정도가 될 것 같더라. 대체로 그렇잖우.

 

형은 지금 슬프다. 힘들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달리 말하면 형은 지금 사유하기에 좋은 기회를 만난 셈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네. 주제를 정하여 공부에 매진하고, 몇몇 지인들과 배움을 나눔으로 행복을 회복할 생각이다. 다시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책도 펼쳐볼 테고.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해 보자!’ 그저께 서점에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필명이 미스미니멀리스트였던가) 처음 이사할 때의 빈 공간을 상상함으로 정리정돈을 시작하라고 조언하는 책 내용에 나는 내 인생의 리셋과 리마인드를 타진해 본 거야.

 

처음 시작하는 첫날이 노 대통령님의 서거 기념일이었네. 내 생각만큼 멋지게 보내지 못했어. 아니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무기력하고 울적하게 보냈다. 시작일을 하루 늦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내 완벽주의 성정 알지?), 첫째 날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었다(진실에 직면하기 역시 나의 또렷한 성정이잖우). “아무 일도 못했다. 말없이 두어 번 울기만 했다. 갓난아기들처럼.”

 

오늘이 둘째 날이다. 어제보다 나은 날을 보내야지, 하고 생각한다. 얼른 최상의 활력을 회복해야지, 하는 조바심이 지금의 내게는 치명적인 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때때로 아니 대부분 적은 자기 내면에 있잖우. 느긋하게 하지만 꾸준하게 내 삶의 희망과 꿈을 향하여 전진할 거야. 꿈이 뭐냐고? 행복한 하루를 쌓는 것! 1년에 250~300개 정도의 행복한 하루를 누리고 싶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싶다. 갓난아기들처럼!

 

네 관심과 애정에 힘을 얻어 쓴 글이다. 고맙다, 동생이자 친구이자 나의 스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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