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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①] 당신은 믿을 만한 분이었습니다.

카잔 2009. 5. 24. 11:59





나는 슬픕니다. 눈물이 납니다.

온 몸을 바쳐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따라

살아 온 훌륭한 정치인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믿을 만한 분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늘 옳은 행동만을 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살 때면

"바로 이 길입니다. 여러분 이 길을 함께 갑시다"라고 말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스스로의 신념을 놓치었을 때에는

"제 불찰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잘못했으니 제가 다시 제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혹, 제가 영원히 길을 되찾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저를 잊어버리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따라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92년에는 민주당을 적으로 두어 부산에 출마하는 것을 시작하여 

네 차례에 걸쳐 지역 감정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 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따랐습니다.

본인도 힘겨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2000년 16대 총선 부산 지역 유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에 자신의 정치 인생을 던진 이후, 줄곧 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토론이나 논쟁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생각에 무조건 격앙된 감정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르다는 그 이유 덕분에 토론과 논쟁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얼마든지 즐겁게 논쟁할 수 있지만,

내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면 전혀 즐거운 논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일관된 말과 행동이 없으면 함께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거나, 진솔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았던 것입니다.

 

2000년 4월 13일, 총선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그 날 밤에

노무현 前 대통령은 링컨의 두번째 취임연설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으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소감문을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 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
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 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뒷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이 노 前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감동적인 글을 읽은 후에는 일시적인 훌륭함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 前 대통령의 소감문은 링컨의 글에 취한 일시적인 감상과 다짐이 아니라

그의 오랜 신념이 더욱 뜨거워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그의 소신은 이미 10여 년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고,

이후로도 원칙과 소신을 향한 일관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 前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를 받게 된

3번째로 역대 대통령이 되던 날, 봉하마을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믿는 것 한 가지는

"면목 없습니다"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뉘우칠 때 하는 말이거나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으로 자신만을 탓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되며 "면목 없습니다"라고 거듭 말하였지요.

나는 이 말 속에 담긴 그 분의 뜻이 의롭다고 믿습니다.

 

노 前 대통령은 지난 달, 이런 말로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폐쇄를 원했습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글을 노 前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에야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의 정치적 무관심에 혀를 차게 됩니다.

노 前 대통령이 이 글을 쓰신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 역시도 아름다운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일부의 가치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대목이 점점 많아져서, 혹은 그런 대목이 모두 드러나서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게 된다면, 저 역시도 노 前 대통령과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언제나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아닌 다른 선생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쁜 삶을 살지 못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신실한 믿음을 누리지 못할 때에는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성장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자기 계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언제라도 제가 선생 답지 못한 삶을 산다면 저를 버리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가르침에 대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라, 온전한 삶에 대한 저의 적극적인 소원입니다.

다만,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부분적 영역에서의 선생 노릇까지 져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를 버리시라는 노 前 대통령의 말을 '고해성사'로 보고

그를 죄인으로 몰고 가며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반쪽짜리(혹은 그 이하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前 대통령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 인생 전부를 던졌던 분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스스로를 성찰하기 마련입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은 정도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고결한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면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나무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 前 대통령의 '나를 버리셔야 한다'라는 말을

'고해성사 + (혹독한) 자기 비판' 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모든 키워드라고 주장하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짧습니다.

두 키워드의 적합한 비율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믿는 신념에 따라 기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려고 애쓴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노력한 그의 일관된 삶이 믿음직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면목없다는 말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을 스스로 내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 살겠다던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이제 정말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되어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신 있는 정치인, 고결한 도덕성을 추구하던 공직자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에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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