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추모②] 대통령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려 드립니다

카잔 2009. 5. 30. 10:42


걸어가는 길에 중간 중간 눈물이 흐른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봉은사 분향소에 갔다.
헌화를 하자마자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흐른다.

*

마지막 인사

대통령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웃고 싶었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방명록에 쓰는) 이 글이 무슨 소용인지요.
당신께서는 이미 이 땅을 떠나셨는데...

(살아계실 때, 당신께서 원칙과 신념을 향해 힘차게 걸으실 때
사나이로서 핏대올린 한 마디의 말로도 대통령님을 돕지 못했는데....
그런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잠시 글을 멈추게 됩니다. 
허나, 바로 그게 너무 한스러워 이렇게 속풀이라도 합니다. 애꿎은 방명록에.)

상록수처럼 늘 푸르른 영혼으로
언제까지나 희망의 상징으로 살아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녹화된 자료가 아니라 실시간 모습의 대통령님 웃음을 지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대중들도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보면 옳은 길을 선택할 것임을 아시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원망입니다. 당신의 고통과 무기력감,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던지는 청년의 원망입니다.
허나, 당신께서 남기신 유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 원망은 이내 슬픔과 아픔으로 바뀌어집니다.
당선될 것이라 믿었던 4.13 총선에서 낙선한 후, 당신이 홈페이지에 쓰신 말을 뒤늦게야 보았습니다.
"아픔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시간의 치료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이셨겠지요.
상식과 원칙으로 일궈낸 대통령님의 한 평생에 찾아든 좌절감과 절망이 얼마나 크셨는지요.
대통령님께 비할 바 못 되지만 저 역시 진솔하게 살려고, 멀리 보며 옳은 길을 걸으며 노력했습니다. 
제 노력이 방향을 잃어 헤맬 때마다 당신께서 먼저 걸으신 길과 하신 말씀은 좋은 푯대가 되었지요.

당신께서는 가셨지만 여전히 제게는 옳은 삶의 푯대로, 원칙은 승리한다는 희망으로 남아 계십니다. 
이제 이 땅에서 대통령님보다 더 아름다운 후배들이 원칙과 승리를 동시에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마지막은 비극이 아닙니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갈 테니까요.
이것이 대통령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원칙과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결단이라 믿기도 하지만,
가족의 가장으로서, 일단의 리더로서 그들의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웠던 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죽음을 선택하신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헤아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모습을 영웅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을 둘러싼 평가 중에 거품이 있다면 걷어내는 데에 뜻을 둘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 슬픔은 걷어지고 나면, 대통령님을 정확히 평가하는 시선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대통령님은 지식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정적인 동요가 아닌 이성에 따른 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는 참 훌륭하신 정치인이셨고, 참 따뜻한 대통령님이셨다는 점입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어느 여학생들과 찍으신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 속에 나오신 대통령님의 구부려진 다리에는 권위주의는 없었고, 그저 따뜻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TV에서는 당신께서 활약하신 장면들뿐만 아니라 생전 보여 주신 소탈한 모습들을 연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당신께서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인간 노무현'으로도 남아 계신답니다.

이런 애도의 물결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당신께서도 아시지요?
오늘(29일)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봉은사로 오는 길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통령님처럼 나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하여 묵묵히 걸어가자.'
그 때, 생각난 사람들이 극우 보수주의자 분들이었죠. 변희재, 조갑제, 지만원 분.
그 분들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하여 목숨 건 분들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 신념이 나와는 너무나 다르니 같은 길을 걸을 순 없겠지요. 반대편에 서게 되겠지요.
나의 신념도 얼마든지 그를 수 있으니 늘 다른 이들의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더 좋은 신념을 만나면 그 신념으로 갈아타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1981년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의 행로를 바꾸신 것처럼 말입니다.

폭군이 죽으면 그의 통치는 끝나지만 대통령님의 죽음은 통치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대통령님으로서 지역간 화합, 민주주의, 도덕성을 추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들을 삶으로 보여 주셨고, 그것은 여전히 추구해야할 가치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은 가시지만, 우리 모두가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생각과 삶을.

저 역시 오래 오래 이 날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통령님과 대통령님이 보여 주신 아름답고, 정직한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이 삶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 고민하며 살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때마다 나의 좁은 편견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겠습니다.

화합, 민주주의, 도덕, 원칙, 탈권위를 가슴에 새기며
대통령님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려 드립니다.
어느 좋은 날에 봉하마을에서 다시 인사 올릴 때까지 평안히 쉬고 계소서.
제가 하느님 나라로 갈 때, 다시 뵐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2009. 5. 29
이희석 올려 드립니다.

'™ My Story > 끼적끼적 일상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끄러운 속내  (16) 2009.06.08
실패했나요?  (9) 2009.06.05
독백  (0) 2009.05.29
[추모 ①] 당신은 믿을 만한 분이었습니다.  (9) 2009.05.24
이제 편히 쉬시길.  (2) 2009.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