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볼펜 한 자루와 소보루빵

카잔 2009. 12. 3. 10:39

<HI-TEC-C>라는 펜이 있다.
볼펜찌꺼기가 없고 잘 번지지도 않는 좋은 펜이다.
이런 녀석이 저렴하면 참 좋으련만 역시 비싸다.
얼마 전부터 딱 이 펜이 필요할 일이 있어 집을 뒤졌는데도 없다.
오늘 아침, 잠시 사무실을 나왔다. 펜을 사려고.
삼색볼펜도 아닌 놈을 1,600원이나 주고 사야 하지만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

얼마예요? 잔돈을 챙겨갔기에 문구마트 캐시어에게 금액을 물었다.
2,200원이요. 예? 이거 예전엔 1,600원이었는데요, 라고 속으로 되물었다.
사실, 조금 큰 문구마트라 저렴하게 팔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웬걸,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금액보다 600원이나 비쌌다.
녀석의 가치가 37%나 뛰어오른 것이다.

문구점을 나오면서, 녀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녀석은 그 동안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값이 올랐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의 가치는 변하고 있었다.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테헤란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서 <던힐>이라는 담배를 사서 나가던 남성이 담배를 피는 모습도 보인다.

저들의 연봉이라는 시장 가치가 해마다 오르기를 빌어 본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연봉과 그들의 존재 가치는 전혀 무관함을 마음 속으로 전한다.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그저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리라고 격려한다.
나의 인격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점점 늘어나는 나의 사회적 관계 속으로 들어온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진 않은지.
다짐과 염려가 뒤섞인 채 나는 <파리바게뜨>에 들렀다. 소보루 빵을 사려고.

*

<파리바게뜨>의 샌드위치는 신선하고 맛있다. 
한 가지 흠은 역시 가격이 비싸다는 거다. 4,800원.
(내가 주로 방문하는 지점은 다른 곳보다 몇 백원이 더 비싸다.)
들어서면서 소보루빵만 살 것인가, 샌드위치까지 살 것인지를 두고
잠시 고민하다가 건강해지기 위한 기간임을 기억하여 모두 사기로 했다.

헉, 겨우 결심을 했더니 소보루빵이 없다.
아직 굽지 않은 것인지, 벌써 다 팔린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 때는 소심하여 그냥 포기한 것인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납득이 안 간다.
매장을 세 바퀴 돌며, 소보루빵을 찾았으나 없다. 결국 다른 빵을 찾아야했다.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내 손엔 콘소보루빵과 샌드위치가 들렸다.

콘소보루빵은 자신의 매니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맛의 빵을 맛볼 위험을 택해야 했다.
그에게는 기회이고,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보루빵이 제1인자이고, 나머지 빵들은 2인자다.
2인자들에게 기회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 오더라도 갑자기 찾아온다.

만약, 콘소보루 빵이 나의 입맛을 사로 잡는다면 나는 또 구입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녀석은 다른 주인을 찾아가야겠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2인자들의 삶에 애정이 간다.
사람들은 1등 기업의 제품, 1인자들의 창조물을 즐긴다.
2인자들의 어려움이고, 진짜 실력 있는 2인자들의 서러움이다.

얼마 전, 평화방송 <북콘서트>에 갔었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세 팀 중, 두 팀은 그저 잊혀져갔고 한 명이 기억에 남아 있다.
동행했던 와우팀원도 그 가수의 노래가 계속 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1인자들의 활약이 눈부신 시장에서 틈새를 찾아 나서는 2인자들.

우연한 기회에 2인자들을 찾아 온 관객들 혹은 고객들.
단 한 번에 그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가다듬은 이들은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 몇 명의 팬 혹은 잠재적 팬을 만들어낸다.
결국, 행운은 준비된 이가 기회를 만날 때에 탄생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가 기회를 잡는 경우는 드물다. 기회가 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기회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늘 찾던 빵이 조기 품절될 수도, 1인자가 아파 대타로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에 묵묵히 준비를 해 두지 못하여 행운이 탄생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2인자들의 열정과 꿈을 응원한다. 바로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행운으로 만들어낸다. 우리 모두 힘을 내자.

혹, 1인자가 되지 못할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랫동안 장수하는 1인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자신의 재능과 기질이 리더보다는 참모에 더욱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니 1인자와 2인자를 가르는 세상의 기준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기준과 의미로 우리네 삶을 바라보자.

합리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자는 말이다.
혹시 워렌 베니스의 『위대한 이인자들』이 도움이 될까?
모를 일이다. 모든 상황이 다르고 몸담고 있는 업종이 다르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놀라운 만큼 다양하지 않은가.
묵묵히 오늘 하루를 살자. 묵묵하지만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의 열심은 내자.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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