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퇴근의 즐거움

카잔 2009. 11. 25. 12:19

예비군 훈련을 반가워하는 남자들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은, 나는 전혀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시간을 훔쳐가는 나쁜 도둑놈이었다. 훈련에서 배우는 것들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졸립기도 하다. 게다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감까지 준다. 그저 어서 훈련이 마치기를 바라며 시계를 들여다 본다. 손목시계를 보며 예상보다 훌쩍 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기뻐하고, 달팽이보다 느리게 시간이 더딜 때면 한숨이 나온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예비군 훈련 과정에서도 의미를 찾기도 하지만, 이렇게 괴로워하며 시간을 떼울 때도 있다. 10월의 향방작계훈련 때의 내 모습이 그랬다. 가까스로 견디어 내고, 훈련이 마치는 시각이면 놀라운 기쁨이 찾아든다. 원인 모를 뿌듯한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토끼뜀을 뛰는 여인의 퇴근 모습을 보았다. 1인 기업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났으니 그간 퇴근의 즐거움을 잊었나 보다. 예비군 훈련이 그 즐거움을 되살려 주었다. 여인의 토끼뜀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하하하.

그런데, 문득 이것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냈다는 느낌 속에는 해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견디어 그 일을 벗어난 것에 대한 해방감이 전부였다. 이것은 벗어난다는 해방감이지 컨트롤하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닌 것이다. 다음 달에는 5일짜리 훈련을 떠나야 하는데, 그 때에는 부담감과 해방감을 5일 동안 반복해야 하리라. 5일이 끝난 뒤에는 가장 큰 해방감을 맛볼 테지만 그것은 인생의 진짜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결국 일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일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해방감과 부담감의 반복되는 감정사이클을 벗어날 수도 없다. 일이 지겨워 잠시 탈출하러 떠난 여행 뒤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이 찾아든다. 결국 귀국이 즐거운 여행도 일상의 승리를 이뤄가는 이들만이 창조해낸다.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여인의 흥겨움이 '퇴근이라는 해방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하루라는 일상에서 승리한 데서 오는 즐거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비군 훈련에 대하여 가진 생각들과 직장인들이 자기 일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이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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