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재능 위에 노력을 더하라

카잔 2009. 12. 15. 14:11

우평숙은 조선 숙종 때의 명창이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도 불품없고, 목소리도 음치였다는 우평숙. 어느 날, 기생 초옥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박연폭포로 가서 매일 소리를 질러댔다. 우뢰같은 폭포 소리에 맞서 오직 목청 트이기 연습만을 하다 심한 성대 혹사로 목이 붓고 온 몸에 열이 났다. 음식을 먹지 못할 지경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몇 달 후 된청과 낮은청을 자유로이 낼 수 있게 되더니, 어느 날 성대의 나쁜 핏덩이를 토해 내어 그때부터 청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가 천하의 명창으로 불릴 만한 일화가 있다.

노래와 무용으로 유명한 평양에 갔다가. 기생들과 함께했다는 이유로 평안 감사에 의해 관아에 감금되었다. 처형될 날을 기다릴 때, 옥중에서 ‘하우씨 강 건널 적…’으로 시작되는 중국 우(禹)임금의 노래를 창조로 불렀는데, 평안 감사가 감탄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온 이 후 장악원에서 노래를 가르치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우창숙의 이야기는 분발하여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불가능이란 없다 는 등의 사례로 사용되면 딱 좋을 듯하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것은 "그는 분발해서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후세에 가르쳐 준 셈이다"라는 글이었다. 나는 이 해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해석을 곁들여 본다.

1) 노력의 위대함 : 인간의 정신력은 위대하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가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초인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정신력의 힘으로 놀라운 성과를 일구어내기도 한다. 정신력의 위대한 힘은 사랑, 극한 상황, 간절한 꿈, 모욕 등의 모티브를 통해 발휘되지만, 일상에서도 정신력의 평범한 힘은 자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최소한 7시간은 자야 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6시간 자면 스스로 피곤할 것이라 예상하여 피곤함을 느낀다. 

정신력의 위대한 힘 덕분에, 노력만으로도 종종 타고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널리 따를 푯대로 삼기는 힘들다. 삼더라도 '전인적인 모델'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부분에서만 적용할 '부분 모델'로 활용해야 한다. 

<[참고] 지나친 보신주의자(자기 몸을 끔찍히도 아끼는 이)는 정신력의 힘을 모르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반면, 신심주의자(정신력을 최우선으로 믿는 이)는 신체의 컨디션이 마음 먹기에 달렸음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몸을 과로로 몸을 망가뜨린다. 여기서도 보신주의와 균형이 필요하다.>

2) 사건의 특수함 : 특수한 사건을 일반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툭수한 사건을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는 적용할 점이 많지 않은 어려움이 생기거나, 자신이 잘 따르지 못할 때 자기를 비하하게 된다. 우평숙의 사례는 지극히 특수한 경우다. 우평숙은 기생 초인으로부터 비아냥거림을 당해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친구들과 순서를 돌아가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우평숙은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노래만을 면제해 달라고 했다. 그 때, 초옥이가 즉석에서 가사를 지어 곡조를 뽑았는데 이런 노래였다. "묻노니 임의 모습 임께서 더 잘 아시리/ 풍류장에 드셨거늘 풍류에 놀고지고/ 어이타 혀마저 박색일까" 못생겼다는 비아냥으로 시작한 이 노래는 혀까지 못났으니 노래마저 못 부른다는 비하로 끝난다. 이것이 그가 산속으로 가서 소리 연습을 한 계기라고 전해진다. 괴롭지만, '강력한 자극'이다.

우평숙의 명창을 향한 여정은 극도의 정신력으로 한계를 극복한 경우다. 목이 부어도, 온 몸에 열이 나도, 음식을 먹기가 힘들어도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힘들지만, '놀라운 지속'이다. 우평숙은 정신력을 발휘할 조건 두 가지, 자극과 지속을 모두 갖추었기에 탄생한 인물이다. 또한 정신력에 의한 노력이 재능이 없는 상황을 뛰어넘어 성과를 만들어낸 경우다. 인류사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고, 그 때마다 나는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느낀다. 나는 그런 인물들의 노력을 존경한다. 그러나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력'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걸어간 과정은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라기 보다는 '도인'이 걸어야 할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3) 재능 계발의 즐거움  : 재능을 계발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른 것보다 잘하는 것이 재능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무엇하며 놀 것인지를 결정할 때, 모두들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놀기를 원한다. (어떤 이는 당구 치자고 하고, 어떤 이는 노래방에 가자고 하고, 어떤 이는 탁구 치러 가자고 한다.) 잘 하는 것에 재미가 깃들기 때문이다. 재능 없이도 정신력과 노력으로 탁월한 '성취'를 일궈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과정에서의 행복까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재능을 쫓아가는 과정은 즐겁고 편안하다. 물론, 재능을 능력으로 단련하기 위해서도 '훈련'이 필요하지만, 재능이 없는 분야에서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편안함과 수월함이 있다.

재능을 불굴의 의지나 노력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그릇된 견해다. 모든 사람들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인간의 다양성을 간과한 것이다. 드러커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나 역시 드러커처럼,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보수적인지, 아니면 지적으로 떨어지는 등과는 관계 없이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는 매력적으로 변한다. 와우팀이라는 다양한 출신 배경과 서로 다른 흥미를 가진 이들로 모인 학습 모임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도 인간의 다양성이다. 내성적이었던 이가 어느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수다쟁이가 되고, 자기 중심적이었던 그가 어떤 순간에서는 아주 헌신적이 되는 순간들.

흥미가 다르듯, 얼굴이 다르듯, 각자의 재능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종종 노력이 재능의 발견 유무를 떠나서 멋진 성과를 일구어내기도 하지만, 재능을 따라 가는 과정보다 행복할 순 없다. 인생은 '성과'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재능을 발견하여 그것을 계발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하다는 논리를 생각해 보시기를.

[요약]
1) 노력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가장 '노력'이 뛰어났던 이를 벤치마킹하는 전략은 위험하다.
2) 우리는 서로 다르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말이다. 특수한 사건을 그대로 따라할 순 없다.
3)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재능을 발견하여 그 위에 노력을 깃들여야 과정까지 행복할 수 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