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는 어제와 오늘, 결정 하나를 하지 못해
많은 시간을 우물쭈물하며 보냈다.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오랜 약점이었지.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에 운동화 하나를 살 때에도 그랬잖우.
겨우 선택하여 구입한 운동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선택에서 밀린 다른 운동화를 떠올리곤 했지.
'혹시 그게 더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 때, 옆에 있던 네가 "난 아까 그게 더 낫던데.."라는 말이라도 하면...
으악, 난 최악의 카오스로 빠져 들곤 했다. 물론, 너는 좋은 장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말야.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이후에도 20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다행스럽게도 20대 후반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할 때도 많다.
결정이 늦어지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
1)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결정이 그에게 불편하진 않을까?'
2) '더 나은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지?'

1번처럼 생각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자존감이 약하여 늘 다른 이들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것.
좋은 사람이어서 다른 이들의 형편을 늘 배려하는 것.
두 가지가 얽혀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너무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우는 중이야.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마음은 더욱 건강해졌고,
배려 때문인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하기도 했지.

분명한 것은 나의 자존감이 아주 높아지고
나의 주견을 가질 만큼 지적 성숙함을 가지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를 완전히 떨쳐 버리기는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는 2번처럼 생각하느라 결정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직 결정하기에는 정보가 적어. 몇 가지를 더 확인해 봐야지.' 라는 생각 말야.
대학생 시절, 보고서를 쓸 때마다 겪었던 문제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난 늘 많은 자료를 조사하다 마감 기한이 코 앞에 닥쳐서야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지.
너무 늦게 착수한 바람에 막상 조사한 자료를 다 검토도 못한 적이 많았어.
지금도 마찬가지인 때가 많아.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두려워 늘 결정을 유보하곤 하걸랑.
이런 성향을 잘 컨트롤 한다면 보다 광범위한 시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편협함을 피할 수 있지만, 우유부단이나 결정을 미루는 습관에 빠지는 단점은 극복해야겠지.

어제, 나를 곤경으로 빠뜨린 것은 와우팀원의 교육 요청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와우팀원들 몇 명이 한달 전에 다가오는 삼일절 연휴에 이틀 과정의 교육을 요청했고,
(고맙게도) 늘 나의 강연을 듣기를 원하는 몇몇 팀원이 이 요청에 합세했어.
하지만, 나는 연휴 4일 전인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했어.
늘 이런 것은 아닌데, 이번엔 결정을 계속 미뤘네.
그들에게 말한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 팀원들이 원하니까 한 번 하지 뭐. ^^
  그들을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니. (이건 의무감이 아니지. 즐거움이지.)
- 책으로 읽고, 워크숍 참여한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미 다 아실 텐데.

나는 교육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묘하게도 나의 호불호는 없었어.
팀원들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고, 그들이 싫으면 나도 싫은 것이었다.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이번 일에선 그랬다.
이번 결정이 내게 퍽 어려웠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 외에도 많다.

수업을 진행한다면 귀한 연휴에 교육을 진행한다는 미안함 비슷한 것이 있었지. 
나는 가족과 함께 할 만한 시간에 와우팀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거든.
혹여나 가족이(특히 연인이나 배우자가) 와우팀을 싫어하게 되면
와우팀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니까.

2008년도에 내가 팀원으로 속한 공동체의 어느 한 분이
아내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단다. "난 당신 선생님 싫어요."
진심은 아니었을 터이고, 순간적인 서운함에 내뱉은 말이겠지만,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결심 하나를 했다.
와우팀원이 자기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저 말을 듣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런 생각으로 인해, 나는 이번 연휴의 교육 진행이 퍽 부담스러웠다. 

반면, 수업을 안 한다면 교육 진행을 원했던 팀원들에게
아쉬움을 안겨 주게 될 터이니 그것 역시 싫은 일이다. 
와우수업 때에는 팀원들의 발표 위주로 진행되기에
팀원들 중에는 정식 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거든.
많지 않지만 그들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두고 참 많이도 고민했어.
고민이 길어지는 까닭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기 때문인데
이런 성향으로 인해, 정말 때로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시원시원하지 않고, 모호하고, 답답하게 보일꺼야.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해야 함을 이제는 알아.
좋은 점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려는 신중함이고, 나쁜 점은 신속하게 결단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얼핏 보면, 결정을 신속히 내리는 사람이 훨씬 쉽게 살아가는 것 같긴 해. 
허나, 그들은 많은 것을 성급하게 제외시키기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단점이 있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 보지 못하는 게지. 
대부분 일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처럼
지혜는 서로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상황에 적합한) 중용을 발휘하는 것이라 믿어. 
그러한 중용의 미덕 안에 상황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도 있는 것이고 말야. 

내가 할 일은 가능성을 고루 따져 보는 기질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신속히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결단력으로 대체해가는 일이겠지.
그나마 20대 중반 이후로, 나의 결단력이 개선되고 있음이 희망적이다. 
우유부단함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자유로워지기도 했어.
중대사가 아닌 경우(가전제품 고르거나, 작은 물건들 구입하는 등의) 결정은 매우 빨리 하지.
일상의 작은 결정을 쉽게 내리게 된 것은 『소박한 삶』이라는 책 덕분인 것으로 기억한다.
보다 좋은 악세사리를 고르기 위한 시간이 내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한 이후,
나의 시간을 (결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데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거든.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결정을 미루는 성향이 다시 도질 때마다,
어서 선택하고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생각하곤 해.
그의 묘비명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잘 자, 친구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1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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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