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나름대로 예술만끽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광석

카잔 2010. 3. 8. 15:11





내 인생의 노래 (1)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십 대 초반의 일이다.

친구들끼리 모여 놀던 우리는 그 중의 한 친구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 날은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서가 아니었다. 두 가지의 개인적인 기억 때문이다.

 

하나는 친구 집의 아파트에서 내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이었다.

내 생애 가장 높은 집에 갔기 때문일까. 나는 그 전망이 좋았다.

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혼자 슬쩍 슬쩍 베란다 곁으로 가서

창밖의 전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하나의 기억은 그 날 친구가 들려준 노래였다.

친구는 감동적인 노래라면, 우리에게 들을 준비를 하라고 청했다.

"가사가 좋아. 잘 들어 봐" 친구의 말에

우리 모두는 (아니면 적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김광석의 유작이 된 [다시 부르기 2]에 수록된 곡이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노랫말에 빨려 들어갔고

노래를 다 듣고 나서는 전율했다. 한동안 멍했다.

 

슬프기도 했지만 ‘슬픔’은 내 감정의 전부를 표현한 것 아니었다.

부부의 인생을 함께 한 듯한 느낌마저 들어 ‘공감’을 느꼈다.

배우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인간의 숙명도 생각하게 했다.

이 노래를 종종 듣는다. 듣고 나면, 나는 내 삶을 추스르게 된다.

 

[다시 부르기 2]는 김광석이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창기의 <변해가네>, 한동헌의 <나의 노래> 등을 실었다.

편곡자 조동익이 원곡을 김광석 버전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1995년 발표된 이 앨범을

나는 2002년에 코엑스의 에반레코드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들을 때마다 새롭고, 들을 때마다 내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그 중에 최고다.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을 수 있을 만큼 느린 템포의 노래는

이제는 노인이 된 한 남자의 인생을 들려준다.

평온한 부부의 인생이 그려져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 소절에서 절절해진다.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노인의 일생을 엿보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오며 깨닫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애착과 배우자의 소중함이다.

나에게도 6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까지 함께 살고픈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욱 먹먹해지는 노래다. 나 역시 속수무책이다.

 

"그(김광석)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 안도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