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발을 씻고 자미에 들어가다

카잔 2010. 8. 21. 21:53

자미(이슬람 사원) 이야기를 쓰려는데,
문득 '낭만 유럽여행'이란 폴더와 자미가 어울리지 않음을 느낀다.
유럽에는 자미가 없다. 성당이 있을 뿐이다.
지난 해 두 달 가까이 유럽을 돌아다니며
도시마다, 마을마다 줄곧 방문한 곳이 성당이었다.

여행 중 만난 길동무 중 몇몇은
"이제 성당은 지겹다"고 할 만큼 유럽엔 성당이 많다.
이 말에 동의하지만, 유럽을 이해하고 유럽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성당을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당마다 역사가 깃들어 있고, 기독교 없이 유럽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터키에 오니, 성당 자리를 자미가 대신하고 있다.
터키에는 성당과 자미가 결합된 형태도 있었고, (이즈니크의 아야소피아 성당처럼)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성당과 자미도 있었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역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터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즐거움이긴 하나, 블로깅 하려니 폴더 분류가 애매한 것이다.

이것은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든 고민이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위치하는 나라다. (아시아에 속하는 영토가 훨씬 많긴 하다.)
만약 이스탄불을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터키는 아시아 여행에 넣었으리라.
허나, 나의 터키 여행은 이스탄불에서 시작되었고,
이스탄불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에 걸쳐 위치한 도시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서쪽은 유럽이고, 동쪽은 아시아다.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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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이번 터키 여행은 유럽 여행에 편입하기로 했다.
특히, 터키에서 20km 떨어진 도시 이즈니크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그리스와 이스탄불 여행 말미에 붙은 짧은 여행임을 감안하여 유럽 여행에 포함하였다.

이즈니크에는 아야소피아 성당과 예쉴 자미, 그리고 이즈니크 호수가 볼 만하다.
성당과 호수에 대해서는 앞선 블로그에서 소개했고, 오늘은 예쉴 자미 차례다.
이즈니크는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안에 볼만한 것들이 몰려 있고,
서쭉 성벽에서 동쪽 성벽까지 1.2km 이니 20분이면 동서를 가로지를 수 있는 마을이다.

예쉴 자미는 시내의 중심은 아야소피아 교회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예쉴 자미는 1378년에 착공하여 1392년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인
무라드 1세 때 완공되었다. 조선이 개국된 것이 139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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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쉴'은 녹색이라는 뜻이다. 예쉴 자미는 미나레의 색깔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자미'는 이슬람 사원을 지칭하는 터키어다.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미나레는 첨탑을 의미하는데, 예쉴 자미의 미나레는 그림과 같이 녹색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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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의 미나레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외부인에게 자미의 위치를 쉽게 알려 주는 기능이다.
이즈니크에서 실제로 이 미나레 덕분에 자미를 찾기가 쉬웠다.
또 하나는 예배 시간을 알려 주는 기능이다.
높은 곳에서 소리치면 더욱 잘 퍼져 나가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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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쉴 자미는 이즈니크의 대표 자미답게 주변을 작은 공원처럼 꾸며 놓았고,
발을 씻는 수도꼭지도 많았다. 터키의 모든 자미에는 이 수도꼭지가 있다.
나도 발을 씻고 있는 터키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씻기 전에 눈여겨 보아 어찌해야 하는지를 익혀 둔 터였다.
나는 발을 씻고, 수돗가 한쪽에 비치된 높은 굽의 나막신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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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높고 바닥이 딱딱한 신발인데, 가죽끈만 있어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신발은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데,
덕분에 자미로 향하는 20~30m 의 짧은 거리를 경건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자미 내부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여자와 아이들만 있었고,
신발장 양 옆으로 카펫이 깔려 있는 곳에 남자 5명이서 함께 코란을 외고 있었다.
거기에 합류하려는데 진행자인 듯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들어가도 되나요?
나는 눈짓과 몸짓으로 물었고, 그는 편안한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뒤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이 나란히 앉았고 앞쪽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를 마주보고 앉은 그 남자의 눈에 띄지 않게 사진을 찍고 나도 무릎을 꿇고 앉았다.
5명의 이슬람 교도와 1명의 개신교 신자가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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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들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함께 일어나야 했다.
혼자 남아 있기도 매우 어색한 상황이었다.
뒤따라 나오면서 슬쩍 자미 내부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경건한 분위기라 내부를 찍을 순 없었다.
입구에 노인네들이 앉아 있었기에 방해가 될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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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관광 명소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예쉴 자미는 달랐다.
경내 벤치에 앉아 남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장면과
젊은 여인들이 코란을 들고 자미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터키가 이슬람 국가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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