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01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중에 '리시마코스'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호반의 도시를 점령했다.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아내인 니카에아 (Nikaea)의 이름을 따서 니케아로 명했다.

니케아는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 이후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중심 도시가 되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리우스파를 정죄하는 종교회의가 니케아에서 열렸던 게다.
이것이 역사상 첫번째 종교회의로 불리는 니케아 공의회였다. 

<아리우스파>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는 수많은 이단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 아리우스파다.
아리우스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여 기독교의 이단이 되었지만,
그 세력이 날로 더해가 7세기에 이슬람교가 되어 또 하나의 종교를 이루었다.


오늘 나는 니케아로 왔다. 니케아의 오늘날 이름은 '이즈니크'다.
오스만 제국의 2대 술탄인 오르한이 니케아를 점령하여 이름을 이즈니크로 바꾸었다.
1331년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질 좋은 점토가 생산되어 타일 도시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즈니크.

이스탄불의 예니 카프 페리 선착장에서 얄로바까지는 페리를 타고,
얄로바에서 이즈니크까지는 '돌무쉬'라 불리는 벤을 타고 이동했다.
'돌무쉬'는 승객이 차면 떠나는 승합차인데, 장거리 마을버스인 셈이다.

이즈니크의 3대 볼거리는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던 아야소피아 교회,
그린 모스크라 불리는 예쉴 자미, 그리고 이즈니크 호수다.
아야소피아 교회는 787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던 그 건물이다.

이즈니크의 아야소피아 교회


아야소피아는 원래는 교회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점령 이후 '자미'로 바뀌었다.
건물은 3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높이 솟아 오른 부분이 원래의 교회 부분이고
양쪽의 영역은 자미로 개조하면서 증축한 것이라 한다. (아래 이스탄불의 역사 참조)

<이스탄불의 간략 역사>

왕조가 바뀌면서 도시의 이름도 바뀌어져 온 도시,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로마,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면서 122명의 통치자가 지배했던 도시다. B.C. 7세기 비자스라는 그리스인이 톱카프 궁전 자리에 도시를 건설하여 비잔티움이라 명했다.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비잔티움은 196년에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다. 395년 로마는 둘로 나뉜다. 5세기에 서로마는 멸망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천년간 번성한다. 

1453년 오스만 왕조의 술탄아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고 도시 이름을 이슬람교가 번성하라는 뜻의 '이스탄불'로 개명하였다. 이후 성당은 자미(이슬람 사원)로 바뀌었고, 코란 경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스탄불 개명의 역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비잔티움 (로마 이전) → 콘스탄티노플 (동로마 제국)  → 이스탄불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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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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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unice 2010.08.19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로로는 이스탄불에서 192Km 떨어진 곳이더라구요.
    그런데, 페리를 타고 이동하셨군요..
    정말 멋진 이동인것 같아요~^^

    와우! 기독교 공인의 역사 아야소피아 성당을 다녀오시다니~^^
    여느 유럽의 성당보다는 훨씬 작군요~

    다음에 이어질 여행기 기대할께요~

    • 보보 2010.08.21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으로도 아주 작다는 것이 보이지요?
      역사적인 의미와는 대조로 규모도 작고
      내부는 텅 빈 페허처럼 아무 것도 없었지요.
      그저 기독교 역사의 스토리를 되새기고 돌아왔지요. ^^

      이즈니크로 오가며 탔던 페리가 무척 쾌적했던 것도 기억나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