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볽은 태양을 바라보며

카잔 2010. 8. 19. 05:46

이즈니크에는 큰 호수가 있다. 터키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를 처음 봤을 때에는 '이게 호수야? 바다지' 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였다. 중국 항저우의 서호가 떠올랐다.

서호의 둘레는 15km다. 얼핏 보면, 바다 같지만 둘레가 가늠된다.
서호10경이라 불리는 명소가 있고, 관광 호텔과 사람들이 많은 서호에 비해
이즈니크 호수는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내가 이 곳에 온 까닭은 갖춘 셈이다.

숙소를 시내가 아닌 호숫가에 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노란색의 호텔은 호수와 가까웠다. 찻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즈니크 호수다.
투숙객이 적어 호숫가로 낸 발코니가 있는 방에 묵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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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었던 호텔 (CEM 글자 바로 아래에 있는 방)


저녁 7시가 넘어갈 무렵, 태양을 집어삼키려는 호수의 모습이 호텔 창밖으로 보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하루 일을 마치고 휴식하러 가는 이 즈음, 태양도 나도 관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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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 호수로 떨어지는 석양


이 무렵의 붉은 태양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에게서 눈부심을 걷어간다.
덕분에 나는 선글라스 없이도 한참 동안 태양을 쳐다 볼 수 있다.
머나먼 낯선 도시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쁨.

소박하지만 깊은 기쁨이었다. 나는 삶을 생각했고, 꿈을 상기했다.
태양 한 번,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한 채 지내온 서울에서의 날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앉았던 저 벤치와 같은 여유로운 순간들을 날마다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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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 호숫가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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