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평화로운 아침에 껴안은 질문 하나

카잔 2010. 11. 7. 07:56


내가 김광석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인식하기 오래 전부터 나는 이미 김광석을 듣고 있었다. 내가 목욕하기를 좋아한다는 건, 다른 이에게서 "저는 목욕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들으면서야 알았다. 그래, 나도 목욕을 좋아하지. 아침마다 샤워 끝내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하지. 더 오랫동안 샤워하고 싶지만,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샤워기를 올려 놓고 몸을 닦는 거잖우. 그러니까 내가 목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전부터 이미 내 몸은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스물 세 살이던가, 네 살이던가, 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인식하기 몇 해 전부터 나는 열심을 책을 읽어 오던 터였다. 그렇다. 많은 경우, 삶이 먼저였고, 인식은 나중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얼 잘하는지 알고 싶다면, 자기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좋아했던 흔적, 재능의 원형이 지난 날들 곳곳에 박혀 있으니까 말이다.
 
말이야 쉽지, 자기 삶을 들여다보라는 말은 아리쏭한 조언이다. 지나간 삶을 두고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매일 매일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 바쁜 것은 아니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회사 업무 중간 중간에 네이트온을 할 시간은 있고, 요즘 생겨난 트위터라는 놈의 정체를 파악할 시간 정도는 있다. 인터넷으로 연애 기사 검색할 시간도 있는 편이다. 그러니 우리가 바쁘다는 말은, (인생의 목표나 시간 활용의 가치 면에서 볼 때) 다소 무의미한 일들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바쁘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바쁘다. 성찰할 시간이 없을 정도만큼은 충분히 바쁘다. 이 것은 곧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게으르다는 말이다.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힘겨운 까닭은 또 있다. 단순히 삶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성찰이 풍성해지기에 힘들다. 새로운 인식이 없으면 삶을 들여다보아도 밋밋한 자기 반성에 그칠 뿐이다. 자기 발견이라기보다는 학창 시절 부모님께 맨날 듣던 잔소리 정도만 건지는 정도다. 도덕적인 교훈이나 당연하고 일반적인 속담, 이를 테면 시간 약속 늦지 말아야지, 회사 일에 좀 더 집중해야지 정도의 성찰을 두고 자기 발견이라고 할 순 없다.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자신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가? 
(자기 삶을 성찰하는 방법이나 지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오늘은 이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하루가 안 되면, 내일도 그래야겠다. 새로운 인식을 돕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나름의 해답을 갖게 되면 하나의 포스팅이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내가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나는 눈뜨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어젯밤 잠들기 직전까지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을 이어 읽었다. 소설의 어느 한 구절이 내 눈을 번쩍뜨게 했고, 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샤워를 하며 책을 읽고 싶어졌다. 샤워 물줄기는 어깨를 때리어 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내 눈은 단편 소설 책장을 하나 하나 넘겨 끝까지 읽어 냈다. 몸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반기는 이가 김광석이었던 게다. 어젯밤부터 밤새 노래를 부르는데 여전히 생생한 목소리다. 옷을 입고 책상에 앉았다. 노래 소리가 들리기도 하다가 안 들리기도 하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이 포스팅을 썼다.

잔잔하고 소박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책을 읽고, 그것도 샤워를 하면서 읽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이 평온한 아침! 잠시 글을 쓸 수 있었던 여유!
그리고, 나에게 도전해 오는 질문들. 이 질문들로 인해 아침의 단상이 생산적으로 느껴진다.
지난 날들 속에 새겨져 있는 나의 관심사와 재능을 발견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성찰의 기술(혹은 지혜)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오래 전부터 관심있던 것이었고, 책과 경험에서 배운 몇 가지의 대답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보다 폭넓고 깊게 다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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