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환상 남미여행

[BT②] 브라질의 전통음식을 먹다

카잔 2011. 2. 4. 19:22

2월 2일 수요일, 여행 둘째 날이 되었다. 정오 무렵에 따찌를 만나 안드레 형님 내외분 가게로 갔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다. 어제, 안드레 형님이 브라질 전통요리 '페이조아다'를 먹자고 권하셨던 게다. 페이조아다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먹을 수 있는데, 그 맛을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에, 나는 당연히 오케이였다. 저녁 식사는 힐데님이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주어 분위기 좋은 식사를 즐겼다. 오후에는 따찌와 서점에 다녀왔다. 이것이 둘째 날의 간단한 일정이다. 맛집 여행과 따찌와의 만남, 그 속 이야기를 해 본다.

따찌는 와우팀원인 제노베파 님의 조카다. 23살 여대생이다. USP라는 브라질 최고 대학교 학생인데, 2010년 1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왔었다. 제노베파님이 한국 여행을 오셨다가 출국하실 때, 공항으로 배웅할 때 따찌를 처음 만났다. 그 때, 따찌는 브라질로 돌아가기 한달 전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녀석이 공부를 좋아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빼곡하게 채워진 한국어 단어장에서도, 호기심 어린 질문에서도 공부 열정이 묻어났다. 따찌는 한국말을 곧잘 하여 나의 <전문가로 가는 5단계> 강연에도 참석했었는데, 강연 내용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나는 녀석의 공부를 향한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인연을 맺고, 오늘 이곳 상파울로에서 다시 만났다. 가벼운 인사로 반가움을 표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남자친구와 통화 중인 따찌 양


따찌를 보면 나의 20대를 보는 듯 하다. 녀석은 왕성한 지식욕과 끊임없이 활동하는 에너지를 지녔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내 자랑인 듯 하며 머쓱하지만, 좋은 체력과 공부 열정은 20대의 내 모습이긴 했다. 성취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기질도 서로 닮았다. 녀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차 안에서는 음악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낸다. 아직 20대 초반이니 그 열정으로 힘껏 살아가면 그의 미래는 희망찰 것이다. 언젠가 우리 기질의 약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오면 차분히 이야기 나누면 좋을 텐데,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여행의 기쁨이고, 밝은 미래를 지닌 청년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행운이다.


따찌와 함께 안드레 형님과 제노베파님을 만나 '페이조아다' 전문 음식점으로 갔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산토스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수많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언론에 소개된 기사들을 스크랩해 둔 것이라 한다. 화려한 명성 앞에 서면 마음이 설레인다. 그 명성에 걸맞은 내실을 가졌다면 온 몸이 즐거워진다. 명실상부한 그것이 사람이라면 만남의 즐거움이 깊을 터이고, 음식점이라면 입이 매우 즐거울 것이고, 음악인라면 듣는 귀가 행복할 터이다. 산토스 레스토랑은 명실상부했다. 음식 맛이 좋았다.


'페이조아다'는 검은 콩을 고기와 함께 끓은 죽과 같은 음식이다.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과거 브라질의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 음식이란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노예들이 농장주인들이 먹지 않고 버린 돼지의 꼬리, 귀, 족발 등을 페이조(feijo)라고 하는 검은콩과 삶아 먹었던 음식이다. 페이조아다는 태생적으로 보면 한국의 부대찌개와 비슷하고, 모양새로 따지자면 '돼지고기팥죽'이라 불릴 만하다. 요즘엔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넣기도 한단다.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에 먹는 까닭은 칼로리가 높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맛은? 글쎄, 돼지고기 수육이 들어간 팥죽 맛이었다. 맛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걸쭉한 국물이 달지 않아 맛났다. 게다가 함께 곁들여 먹는 나물과 곁반찬들이 입맛을 돋구어 주었다. 무엇보다 별미를 먹는다는 사실이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고, 함께 식사하는 분들과의 친밀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쌀밥과 함께 비벼 먹기도 했는데, 구수한 팥죽을 먹는 정서를 느껴서 정말 푸근한 식사 시간이었다.


식사 후에는 따찌와 함께 빠울리스타 거리(Av. Paulista)로 갔다. 익숙한 곳이다. 2년 전의 상파울로 여행에서 가장 많이 왔던 곳이 빠울리스타다. 서울로 치면, 삼성역에서 강남역까지 이어지는 테헤란로 정도가 되겠다. 멀지 않은 거리를 걸었지만, 시차 때문에 몸이 살짝 무거웠다. 졸음이 몰려왔던 게다. 카페에 들어가 잠시 졸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 낮에 잠을 자지 않아야 저녁에 잠을 잘 수 있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는 절대로 낮잠을 자선 안 된다!


우리는 Livraria Cultura 서점에 들어갔다. 이런 저런 책을 구경하기도 하고, 서점 한 켠에 있는 레코드샵에 들어가서 Jazz를 듣기도 했다. 스탄 겟츠의 앨범 하나가 마음에 들었지만 2만 5천원이라는 가격에 놀라며 내려 놓았다. 브라질 여행 기념으로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말자를 택했다. <Plays for Lovers>라는 앨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끈적한 테너 색소폰 음율도 좋았는데, 이제와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늘 이런 식이다. 결정해야 할 때 과감하게 결정못하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성향 말이다.


Livraria Cultura 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2년 전에 들렀을 때에도 사진을 찍었지만, 하드디스크와 함께 날아갔으니, 다시 몇 장을 찍었다. 이책 저책 만지작거리며 서점을 돌아다닐 만한데, 졸음이 몰려와 그러진 못했다. Jazz의 역사에 관한 책 한 권을 보니, 20대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재즈를 좋아하여 재즈 바를 찾아 다니고, 용돈을 모아 앨범을 구입하고, 재즈에 관한 책들을 읽던 추억. 존 콜트레인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고, 리 모건, 스탄 겟츠, 아트 블래키 등의 뮤지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되면 Blue Note 에도 가 보아야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스탄 겟츠의 'Thanks for the Memory'를 듣고 있다. 아! 고맙다.
 미소로 추억할 이야기가 있는 내 생이여.


짧은 서점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서점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상파울로에 대해, 따찌의 비전에 대해 혹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경을 헤매듯이 내가 비몽사몽 했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쓰며 잠을 쫓아내려 했지만, 나는 말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마도 따지는 서운했을 것이다. 허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려앉는 눈꺼풀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따찌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초저녁 단잠에 빠졌던 나를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