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환상 남미여행

[BT④] 브라질의 스위스, 캄포스 도 조르덩

카잔 2011. 2. 10. 10:05
 

2 3일 목요일, 여행 셋째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깼다. 여행 온 이후로 새벽 3~4시 무렵이면 잠이 깬다. 브라질과 한국의 시차는 12시간(여름엔 11시간)이다. 지난 여행 때에도 시차로 3~4일을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에이,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적응 기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이번이 더 힘든 것 같다. 오후 3시 이후엔 무지 졸리다.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이니까. 그럴 때마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 낮 졸음을 참고 견뎌야 밤에 자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메일 회신을 한다. 한국에서의 일과와 비슷하다. 하루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갖는, 새벽의 3~4시간이 달콤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메일 회신을 하면서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N 사건 이후에 쓰는 글이, 한 권의 책을 향하여 가지런하게 정리되는 글이 아니어서 속상하고 허망하지만, 여행기라도 쓰면서 애써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홀로 자유롭게즐기는 나만의 새벽 시간! 지금까지의 새벽 시간을 설명하는 이 문장에, 나는 부사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천히 유롭게즐기는 벽을 매일 누리고 싶다. 요즘 나는 삶의 속도 늦추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홀천자새를 보낸 후, 6 30분에서 7시 사이에 아침 식사를 한다. 호텔 조식은 간단한 뷔페다. 빠빠야와 멜론 등의 과일, 시리얼 그리고 빵과 커피를 먹는다. 평소 즐기는 식사 입맛에 맞춤한 메뉴다. 특히, 치즈와 슬라이스 햄을 한 조각 넣은 빵과 커피는 입맛을 돋운다. 치즈는 슬라이스가 아닌 흰 색의 두툼하고 크림 같이 부드러운 걸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호텔 조식을 먹지 못했다. 6 30분에 호텔을 나섰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아침식사

 

휴게소 매점에서 파는 간식들


오늘 일정은 브라질 근교 휴양 도시에 다녀오는 것이다. 캄포스 도 조르덩(Campos do Jordão)! 상파울로 주에 있는 브라질의 스위스라 불리는 고품격 휴양 도시다. 상파울로에서 190km 떨어져 있으니 서울에서 대전보다 좀 더 먼 거리다. 차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우리는 7시가 조금 못 된 시각에 출발하여 11시에 도착했다. 도중에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며 한 번, 휴게소에서 잠깐 바람을 쇠며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넉넉히 쉬면서 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속도의 여행이 좋았다. 동행한 분들의 여행 속도가 내게도 편안했다.



안드레 형님, 제노베파 님 그리고 따찌! 오늘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 분들이다. 어제 브라질 전통요리 페이조아다를 함께 먹었던 멤버들이다.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시던 안드레 형님은, 아우님 덕분에 하루 일을 쉬면서 이렇게 느긋한 여행을 즐기네,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야말로 형님 내외분 덕분에 매우 유쾌한 하루를 보내어 감사했다. 잠시 후 도착하게 될 캄포스 도 조르덩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 드리는 안드레 형님


안드레 형님 부부는 캄포스 도 조르덩에 여러 번 다녀오셨지만, 당신들께서도 여름에 가는 것은 처음이란다. 주로 7월 겨울 시즌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단다. 상파울로의 겨울이 한국에 비해 추위가 밋밋하여, 이곳의 추위를 맛보려는 것이다. 겨울에는 인공 눈을 뿌려주기도 해서 한껏 분위기가 흥겨워진다. 7월에는 거리의 중심에 설치된 무대에서 국제 페스티벌도 열린다. 거리에는 거리에 넘쳐나고, 바와 술집에는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 캄포스 도 조르덩!


 이런 분위기를 나는 모른다. 겨울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내가 방문한 2 3일은 여름이었으니까. 한적했다. 거리에 넘쳐나는 것은 적막한 분위기였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내 목소리가 크게 울려서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더니 공연 무대를 지나고 있었다. 국제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그 무대였다. 무대 위에도, 객석이 앉는 공간에도 사람이라고는 우리 네 사람과 잔디 위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정원사 한 명 뿐이었다.


우리가 탔던 관광열차

 


겨울에는 흥겨움의 기쁨이 있겠지만, 나는 여름의 한적함도 좋았다. 어쩌면, 비교 대상이 없어서 더욱 잘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우리에게 호객꾼 한 명이 다가와 안드레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잠시 후, 우리는 작은 기차에 올라탔다. 50분 동안 캄포스 도 조르덩을 순회하는 관광 열차다. 열차라고 하지만, 기차는 아니고 자동차의 짐칸 부분을 개조한 것이다. 젊은 가이드의 목청 높은 포르투갈어 설명이 인상 깊었다. 물론 내용이 아니라, 마이크 없이 인상을 써 가며 전하는 모습이 그랬다. 다행히도 나는, 따찌의 통역으로 관광 안내의 일부를 한국어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유명 인사들의 멋진 별장

 

캄포스 도 조르덩이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자연과 멋진 집들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화려한 저택들은 브라질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이 산단다. 어느 정도의 유명 인사인지 궁금하여 따찌, 너도 아는 사람이야?” 했더니 당연히 아는 사람이란다. 가이드의 설명 중 기억에 남는 건, 시내의 집들은 독일의 주택 양식을 따 왔는데, 집을 지을 때 정해진 양식을 따라서만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여행자들은 독일에 온 듯 한 기분으로 시내를 여행할 수 있다.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산 위의 멋진 저택들이 아니라, 시내에 형성되어 있는 독일 마을 때문이었다.


 

관광 열차에서 내려 우리는 맥주를 마시러 <바덴바덴>이라는 바로 향했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다. <바덴바덴>에 갈 거라는 이야기는 차를 타고 오면서 말씀하셨을 때, 나는 독일의 Baden Baden 을 떠올렸다. 술집 이름인 줄 모르고, 도시 전체가 바덴바덴을 본 떠 만들어진 것으로 상상했다. 바덴바덴은 온천과 최고급 호텔, 아름다운 산책로로 유명한 독일 최고의 고품격 휴양지다. 캄포스 도 조르덩의 구석구석을 가보지 못해 엉성한 비교가 되겠지만, 바덴바덴의 아름답게 꾸며진 산책로와 온천이 주는 휴양지의 느낌에 비하면 캄포스 도 조르덩이 조금 약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겨울철 젊은이들의 신나는 분위기와 산 속에 자리잡은 고급 호텔에서 맛보는 휴가는 매우 즐거울 것 같다.

 

나는 독일 분위기를 맛본 것이 좋았다. 독일은 내가 한 번쯤 살고픈 나라다. 그리고 바덴바덴은 바이마르 다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다. 홀로 한 달 동안 독일 여행을 한 추억이 생각나서 기분이 유쾌해졌다. 홀로 다녀온 여행이기에, 추억은 흥겨움에 취한 기쁨보다는 자유로운 평온함 혹은 차분하고 아련한 그리움에 가까운 것들이다. 바이마르와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테에 한껏 빠져든 기억들, 니체의 Archiv(고문서보관소)에서 니체 동상을 한참 쳐다 보았던 기억, 함부르크의 시청 앞 알스터 호숫가를 거닐던 기억, 하이델베르크의 골목골목을 누비던 기억들.


바덴바덴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걷고 있으려니, 추억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바덴바덴 Bar에 앉은 우리는 독일 맥주를 시켰다. 안주로 푸짐한 소시지를 시켰는데, 독일 김치라 할 수 있는 사우어크라이트 등 낯익은 사이드 메뉴들이 반가웠다. 깊고 짜릿한 맥주 맛은 일품이었다. 운전을 하시는 안드레 형님은 많이 못 드시고(알고 보니, 그날 컨디션이 안 좋으셨단다), 내가 가장 많이 마셨다. 맥주 세 병을 시켜 넷이서 나눠 먹었으니 많은 양은 아니었겠지만, 나를 알싸하게 취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나는 취했다. 몸을 가누는 데에는 문제없지만, 기분은 매우 좋아진, 그런 취함 말이다.

한적한 바덴바덴 Bar







 

두 시간 정도 앉아 있었을까? 우리는 바덴바덴을 나와, 거리 구경을 조금 더 하고 4시에 상파울로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휴게소에 들러 옥수수 주스를 마셨던 것과 잠시 풍광 좋은 곳에서 사진 한 두 장을 찍은 기억이 아련할 뿐 나머지 기억은 없다. 눈을 뜨니 호텔에 거의 다 왔다. 7 30분이었다. 그 때까지도 머리가 어질했다. 아직은 시차 적응이 덜 되었을 터이고, 맥주를 들이켰으니 잠이 쏟아졌다. 떠나가는 차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고 객실로 올라왔다.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좋은 하루를 선사해 주신 안드레 형님 부부와 함께 해 준 따찌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기분 좋게 침대에 몸을 뉘였다. 잠시 고마움을 헤아리고 싶었지만, 나른한 몸, 무거워진 눈꺼풀은 나를 초스피드로 꿈나라로 데리고 갔다. 정신 줄의 마지막에 든 생각은 , 맥주 몇 잔에 무너지는구나. 나는 이제 술이 세지 않구나. 아니 약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고백(?)이었다.

아마 나는 이런 편한 자세로 잤을 것이다. 눈은 감고서.


 
브라질의 스위스라 하지만, 나는 시내에 머물러서 그런지 독일 정취를 더욱 많이 느꼈던 하루였다. 때마다 형님 부부와 나눈 속 깊은 대화들, 따찌와 주고받은 재밌는 농담들, 독일에 관한 추억에 잠기었던 순간들, 그리고 짜릿한 맥주 맛으로 인해 매우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형님 부부가 <4천만 땡! 프로젝트>의 투자자가 되어 주신 것도 기쁨을 더해 주었다. 여행 셋째 날은 캄포스 도 조르덩이라는 키워드 속에 많은 추억을 간직하게 된 하루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