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환상 남미여행

고산병이라뇨? 난 건강한데요!

카잔 2011. 2. 23. 12:13


[페루여행①] 고산병이라뇨? 난 건강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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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간의 페루 여행이 시작되었다. 상파울로 공항을 떠나 페루 남부에 있는 쿠스코(Cusco) 시를 향한 여정은20시간이나 걸렸다. 첫 비행기가 5시간이나 연착되기도 했고, 둘째 비행기를 타기 전에 5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다림은, 달콤함 휴식이기도 하고, 절호의 개인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시간을 사랑한다. 글쓰기나 책 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럴 때에만 잠시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지난 한 주간은 일정이 많았다. 여행지에서도 일상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강연 이후, 약속도 여럿 생겨서, 글을 쓰거나 메일 회신하는 등의 일을 며칠 동안 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최대한의 노력으로 이곳 분들을 만난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만큼은,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 듬뿍 썼다. 오랜 만의 일이다.

 

그러다가 맞이한 리마 공항에서의 비행기 대기 시간은 참 달콤했다. 공항 내 카페에서 커피와 오믈릿, 그리고 토스트를 먹고서, 이런 저런 밀린 일을 했다. 시간이 되는 데까지 메일 회신을 하고, <리노의 독서노트> 초고 일부를 작성했다. 3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 기막히게 즐거운데, 탑승 시간이 20분 밖에 남지 않아 게이트 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리마 공항은 난생 처음 와 본 곳이지만, 낯설지 않다. 공항은 비슷비슷하다. 익숙한 모습이라고 해서, 설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있다는 것은 집 안에 있다는 것과 다르다. 집에 있을 때보다 위험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생겨나겠지만, 흥미로운 일을 만날 가능성과 배움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겠지만, 배는 정박이 아닌 바다로의 항해를 위해 지어졌다. 우리 역시 집 안에만 있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이번 페루 여행의 예상 하이라이트는 마추픽추다. 쿠스코 시에서 이틀을 머물고 3일째 되는 날에 마추픽추에 다녀올 예정이다. 쿠스코 시()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고, 쿠스코의 북서쪽 우루밤바 계곡에 있는 마추픽추는 매우 빼어난 절경이란다. 잉카 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마추픽추에 대한 사진 한 장 본 적이 없기에 신바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아니다. 들뜬 기분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여행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간의 독일 여행 역시 홀로 조용히 즐긴 여행이었다. 독일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 두 개를 꼽으면 그 중의 하나다.

 

마추픽추는 예상하이라이트다. 잊지 못할 사건이 생기거나, 뜻밖의 장소가 하이라이트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이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계획은 할지라도 어떤 일이 가슴 속을 치고 들어올 지는 떠나 보아야 알게 된다. 과연, 페루 여행 첫째 날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일이 여행 첫째 날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었다.

 

쿠스코 시는 해발 3,400m에 있는 도시다. 마추픽추보다 약 1천 미터 정도 높은 지대에 있다. 마추픽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고산 지역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상파울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 수녀님이 쿠스코에서 무지 고생하셨다는 게다. 두통과 피로감을 느끼며 여러 번 구토까지 하셨단다.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는 쳤지만, 겁이 나거나 염려하지는 않았다. 나는 젊으니까.

 

하지만 쿠스코 시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모자를 쓰고 자서 그런가 보다 했다. 간혹 모자를 오래 쓰면 약한 두통이 생기곤 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 시티 투어를 하는 내내 모자를 안 쓰고 돌아다녔는데, 두통은 오히려 조금씩 심해졌다. 가이드에게 말했더니, 고산병의 일반적인 증상이란다. 그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효과는 없었다. 혹은 효과가 있었더라도 고산병의 힘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마지막 관광 코스에서, 내가 자꾸 머리가 지끈거리는 표정을 짓자, 가이드가 산소를 마셔 보겠냐고 했다. 시티 투어를 하던 중에도, 호흡기가 달린 500ml 페트병 같은 것을 입에 대고 숨을 들이쉬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재미 삼아 한 번 마셔보고 싶었다. 갔더니 내가 보았던 작은 페트병 산소병과 달랐다. 호흡기를 하나 받아 들었더니, 튜브를 연결하여 반대편 튜브 끝을 큰 산소통에 꽂았다. 나는 4~5분 동안 앉아서 산소를 들이마셨다. 컨디션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긴 했다. 산소를 사셔 마신 적은 처음이니까. 산소를 마시는 데에는, 차 한 잔과 호흡기까지 합쳐서 10 Soles( 4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사실, 그 때까지는 해도 견딜 만한 두통이었다. 5시 남짓 된 시각에 호텔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두통과 구토감이 더욱 강해졌다. 관광하는 내내 보슬비가 내려 몸은 으스스했고, 고산병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던 것이다.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호텔 객실로 뛰다시피 들어왔다. 호텔 어딘가에 산소통이 있다는데, 그걸 찾으러 가기도 힘겨웠다. 아플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낫곤 했다. 미련한 방법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효과가 좋다.

 

고산병에 대해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페이지 로딩 속도가 너무 느렸다. 기다리기도 힘겨워, 일단 샤워부터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도움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식사를 할지 말지는 샤워하고 나와서 검색 결과를 확인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은 나아졌다. 하지만, 고산병에 대한 검색 결과를 확인하고선 후회했다. 분명 나는 지금 고산병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게 맞았고, 해결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되도록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운동이나, 음주, 샤워, 과식 등을 피해야 한다.” 허걱! 방금 샤워를 했는데

 

고산병을 대비한 최선의 해결책으로는 여행 전에 충분히 쉬는 것이란다. 에궁! 여행 직전에 상파울로 동물원에 다녀 오느라 힘을 썼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왔구만! 이제 과식이라도 피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후 6시 즈음이었다. 잠을 청하면서도, 잠을 자고 나면 나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긴 했다. 어차피 이 객실 안에서도 산소가 부족할 테니까.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 두 번 깼지만, 잘 잤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9시간을 잤던 것이다. 잠에서 깬 직후에는 두통이 거의 없었다. 일어나서 와우카페에 들어가 글 하나를 읽고 나니 다시 두통이 찾아왔다. 7기 와우팀원들의 독서 축제를 모두 읽고 난 즈음에는 두통이 심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벽 4시 무렵,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고, 90분을 더 자고 일어났다. 5 30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페루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다. 일어난 지 두 시간 지난 지금까지, 두통은 없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나의 몸은 밤새 고산 지역에 열심히 적응하려고 애를 썼나 보다. 이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괜찮다. 마추픽추는 이곳보다 낮은 지역이니 염려할 것도 없겠다. 그래도 과식은 피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어제 하루 아프고 나니, 저절로 신경을 쓰게 된다. 허허 웃음이 나온다. 젊다고 고산병을 얕보더니, 잘 됐다, 라는 생각도 든다. 설마! 둘째 날의 하이라이트도 고산병이 되진 않겠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