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환상 남미여행

[BT③] 평생 우정

카잔 2011. 2. 6.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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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후에 알람이 울리도록 맞춰 놓았지만,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시간을 확인하니, 1시간이 지난 7 15분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솔개 여사님들을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다. 약속 시간이 15분이 지난 즈음에 객실로 전화를 하신 게다. 이 먼 곳에 와서 약속 시간에 늦다니! (사실, 이후에도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자느라 지각하는 일은 또 있다.) 나를 반겨 주신 덕분에(?) 죄송함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다.

 

 빈 손으로 나온 나를 보시더니, 근사한 곳에서의 식사라며, 카메라를 가져 오라고 권하신다. 그럴까요? 잠시만요, 하고 객실에서 카메라를 챙겨왔다. 힐데 님의 차를 타고 저녁 식사 장소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며, ! 시계도 바꿔 차고 왔어야 하는데, 하고 잠시 후회했다. 캐주얼한 것과 클래식한 것 이렇게 두 개의 시계를 챙겨왔는데, 지금이 클래식한 것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이미 차는 떠났다.  


오늘 저녁식사를 함께 한 솔개와우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나는 아직 배가 불렀다. 점심 식사할 때, 안드레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거, 먹으면 저녁까지 든든해.” 과연, 브라질 전통요리인 페이조아다는 소화하는 데 오래 걸렸다. 솔개 여사님들이 오늘 식사에 대해 언질을 해 주었다. “선상님, 오늘 저녁식사는 근사한 곳입니데이. 양보다는 맛과 질이 아주 좋은 곳이예요.” 내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도착한 곳은 ‘Cidade Jardim’이라는 곳이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생각나는 주상복합아파트 같은 곳이었다. 각층마다 샤넬, 페레가모 등의 명품 브랜드 샵이 입주해 있고, 누워서 보는 극장, 고급 음식점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고 한다. 건물 내 곳곳에는 살아있는 나무와 생화들이 가득하여 이름에 걸맞은 내부 모습이었다. Cidade Jardim를 영어로 쓰면, City Garden이 되니까.

 

상파울로, 베히니 지역 야경

 

건물의 1/3 높이에 있는 외부 테라스에서는 상파울로의 도시 전망을 볼 수 있었다. 멋졌다. 새롭게 개발되는 지역인 듯 했다. 주워 들은 바로는, 브라질에는 재개발이라는 개념이 없단다. 어느 정도 살다가 건물이 낡으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롭게 주택단지나 회사밀집구역을 건설한다. 국토가 워낙 넓어서 그렇단다. 생경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언젠가는 빠울리스타 거리도 새로운 비즈니스 밀집지구에 중심가라는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자력 갱생을 해도 상황이 바뀌어 예전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4기 와우팀원 한 명이 생각났다. 지난 해 연말, 첫 아기를 출산한 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그녀는, 1월 말에 있었던 2011년 와우신년회에 참석하지를 못했다.

 

출산한 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신년회 당일에만 해도 친정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봐 주기로 한 친정엄마가 늦게 오시는 바람에 집에 있어야 했다. (나는 친정엄마의 딸 사랑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날 시름시름 아팠다고 한다.

 

와우모임 못 가서 병 났구나는 신랑의 말, “너 서울 못 가서 그렇지?”하시는 친정엄마의 말을 알게 된 것은 그녀는 며칠 후에 쓴 <와우앓이>라는 글을 읽어서다. 대견하게도, 그녀는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예전과 달라진 상황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녀의 반응이 훌륭했다. 아기를 향한 사랑 덕분이기도 할 테고, 여자에서 엄마가 되면서 세상을 보다 넓게 포용하는 힘을 지닌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와우 행사 불참이 무어 그리 특별한 일이냐고 말하면, 그녀에겐 서운할 일이다. 와우 행사 때마다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그녀였으니. 올해 신년회에도 참석 의지가 강했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오지 못했다. 분명, 어찌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처럼, 마음이 변치 않아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변화로 인한 변화도 있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라는 말은 사람의 변심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처럼 상황의 변화로 인해 예전 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11년 신년회 때, 출산을 하여 오지 못한 와우팀원이 두 명이었다. 모두 4기 와우팀원이었다. 문득, 지난 해 신년회에서 4기 와우팀원들이 보여 준 장기자랑이 그리웠다. 지금은 6기 와우 빙고들과 7기 와우친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들의 상황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2011년 와우신년회 때 나는, 이처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었다.

 

평생 우정이라고 해서, 삶의 모든 영역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펼쳐지는 상황들과 그 상황들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다가, 마음이 동하여 만나게 될 때 변화무쌍한 여정을 걷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것이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볼 때 자주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잠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평생 우정은, 그럴 때에도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마음의 연결이 오랜만의 만남을 반갑고 따뜻하게 만든다. 서로 살아갈 힘을 주고 받기도 한다.

Cidade Jardim 실내에서 폼 잡고 한 컷. photo by 소피아


지금 나는 브라질에 왔다. 이 말은 곧 5기 와우팀원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의미다. 브라질은 수많은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니라, 평생우정이 될 솔개 여사님들이 사는 나라다. 여행 첫째 날, 도나 아나와 도나 소피아와 식사를 할 때, 도나 소피아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책 읽고 만나 일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을 평생 할 거예요. 팀장님이 신경 쓰시든 안 쓰시든 와우 활동을 할 거예요


우아한 아나스타시아 님

 

이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곁에서 잠시 돕는 역할을 할 뿐이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은 자신에게 달렸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우정이 있으니 더욱 좋다. 솔개 여사님들은 함께공부하는 것, 책을 읽고 나누는,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분들이다. 다른 자리에서, 나도 이렇게 화답했다. “저도 평생 솔개 여사님들의 와우 활동을 돕겠습니다. 좋은 책을 선정하고, 유익한 메시지를 전하는 노력을 계속 하겠습니다.” 솔개 와우들 역시 평생 우정이다.


Cidade Jardim 내부에서 한 컷 찰칵

 

이런 애틋함을 안고  5기 와우팀원이신 솔개여사님들을 만나러 브라질로 날아왔다. 초대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화려하게 환대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그 때마다 결심한다. ’더욱 잘 하자. 솔개 여사님들에게 적합한 책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자!’ 이 다짐은 식사 한 번 할 때마다 다져진다. ‘Cidade Jardim’에서 강 건너편의 풍광을 보면서도 같은 다짐을 했다.

DUE CUOCHI 레스토랑 내부모습

  

넓은 테라스를 거닐며, 이런 생각에 좀 더 깊이 잠기고 싶었지만, 레스토랑에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 수 있다고 하여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레스토랑은 근사했다. 넓은 창이 마음에 들어 창가 자리가 탐났지만,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잠자느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의 불찰인 듯 하여 미안했지만,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난 후, 속으로 삼켰다. 왠지 모르겠지만, 브라질에서는 속으로 삼키는 이야기가 많아진다.

[위] 구운 호발로(생선이름) [아래] 이탈리안 스파게티의 일종

 

레스토랑 실내는 높은 천장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한쪽 벽면 전체가 창으로 되어 있어 창 밖의 풍광을 내다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경건한 성전에 들어설 때 거룩한 기운을 느끼듯이, 그 곳에 들어서며 테이블마다 앉은 사람들의 유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 분에게도 고마웠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준 분들에게도 감사했다. 점심 식사로 먹은 페이조아다의 포만감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맛깔스러운 음식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지만, 나는 분위기를 맛나게 즐겼다. 이렇게 둘째 날이 저물어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