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사랑과 이별, 이것이 삶이다

카잔 2011. 5. 27. 09:06

그녀가 찾아왔습니다. 다시 교제를 시작하자는 말을 하려고 온 겁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세 번이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나는 3번의 청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마음이 닫혔지만, 나는 그제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떠났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거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거절한 원인은 지금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다시 그녀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뒤늦게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아직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시작하자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늦었나 봅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이 떠난 겁니다. 내가 너무 늦게 부탁을 받아들인 거죠.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나의 말이 예전처럼 달콤하지 않다고. 그녀의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 번 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행동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못 만나면 그냥 돌아오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출간된 내 책을 들고 용기를 내어 다시 그녀 집 앞 지하철역에서 기다렸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첫 눈이 왔기 때문입니다. 추운 날, 밖에서 3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렸지요. 눈은 그쳤고,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오는 귀갓길이 참 쓸쓸했습니다. 큰 우산을 들고, 긴 코트를 입고, 건네지 못한 책 한 권을 들고...


친구와 지인들은 확신이 있다면 아주 적극적으로 구애하라고 했습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찾아가고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리 하지는 못했습니다. 평생을 노력할 자신이 있었고,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만, 나의 방식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사귈 때에 많이도 마음을 아프게 해서, 헤어진 이후에도 다시 그녀를 괴롭히는 건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그녀가 괴로울지 은근히 기다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들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서 완전히 돌아섰음을.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뒤돌아설 때에는 화끈하게 딱 잘라 돌아서는 그녀의 성정을. 함께 잘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음에도 조심스러웠던 까닭입니다.


이듬 해까지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습니다. 새해가 되자, 묵상집과 성경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회사로 보냈으니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화이트데이가 되었습니다. 그 날은 동덕여대에서 강연을 했던 날이기도 했지요. 나는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장에 함께 갔던 동료와 헤어져 홀로 그녀의 회사 근처로 갔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큰 꽃다발을 샀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녀 회사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그녀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고요. 초록색 신호로 바뀌어 그녀 쪽으로 가려 했는데, 그녀가 활짝 웃더니 곧 어떤 남자를 만났습니다. 절묘하게도 남자의 차가 주차된 장소가 내가 서 있던 곳이라 두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보느라, 그리고 내가 비스듬하게 서 있었기에 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둘은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나는 둘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달리 생각하고 싶었지만, 연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이트데이였고 다정해 보였거든요. 드라마에서 한 두 번은 보았던 장면입니다. 남자가 준비한 꽃다발을 손에서 턱, 하고 놓아버리는 장면, 하지만 나는 꽃다발을 꼬옥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료를 다시 만나기로 했기에, 그를 만나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와 그녀가 연인이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네요.


헤어진지 10개월이 되어서야 나는 이제 정말 놓아주어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마음이야 여러 번 먹었었죠. 내가 놓아주든 그렇지 않든 이미 그녀는 저만치 멀리 떠난 사람입니다. 놓아주겠다는 마음은 그녀에게 붙들려 있던 내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습니다. 2년을 사귀었고, 10개월 동안 마음앓이를 했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났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시간은 서로 다르듯이, 같은 사랑인데 서로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은 10개월이나 차이가 납니다. 끝까지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처럼, 나는 참 오랫동안 마음을 놓치 못했던 겁니다.


이제 그녀는 결혼한지 1년 반이 지났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슬픈 화이트데이 날에도,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던 날에도 가슴이 참으로 먹먹했습니다. 이로써 나도 마음 속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하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음도 절절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별을 노래한 유행가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인생의 일부를 진하게 체험한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한 번도 사랑으로 마음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열렬한 사랑 후에 죽도록 가슴 아파 본 사람의 영혼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시간은 상처를 달래줍니다. 더디긴 해도 결국엔 우리를 만져 줍니다. 그녀가 결혼할 때에도 멀리서나마 온 마음을 다해 축하했었지만, 약간의 먹먹함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녀의 아이 소식 들었을 때에는 먹먹함이 덜하였고, 전심으로 그녀를 축복해 주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관념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진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그 사랑은 이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헤어짐이든 이혼이든 사별이든 항상 사랑의 끝은 이별입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내가 가수라면 삶을 노래할 것입니다. 작가라면 삶에 대하여 쓸 것이고, 상담가라면 인생을 상담할 것입니다. 김광석의 노래가 듣고 싶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을 읽고 싶은 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