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별 내용이 없는 시시한 글일 수 있음.


<7광구>를 보았다. 아쉬운 영화였다. 서사는 비약적이었고, CG는 엉성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부터 흥미를 잃었지만, 하지원의 열연 덕분에 잠들지는 않았다. '7광구'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내가, 7광구의 존재와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 영화가 나에게 준 유익의 전부였다. 

영화를 보다가 결정적으로 흥미를 잃은 대목은 캡틴의 탈출 장면이었다. 해준(하지원 분)의 말처럼, 캡틴은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면서 이론만으로 결정'하는 리더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버린 인간이었다. 

그도 부하들의 절규를 보며 잠시 갈등하긴 했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캡틴이 부하를 버린 대목에서, 나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좋았다. 캐릭터가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몰염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상황에서 부하에게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영웅일 것이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다. 캡틴은 잠수정을 타고 석유 시추선을 안전하게 탈출했다. 해저로 서서히 돌진하는 잠수정! 그런데 돌연 괴물이 나타나 잠수정을 습격하여 캡틴을 죽인다. 불의한 자의 비참한 결말에 속이 시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의 리얼리즘은 크게 손상되었다. 괴물을 자신이 쫓던 이들을 잠시 놓아두고 시추선에서 어찌 해저로 한걸음에 달려왔단 말인가.

(시추선 아래로 떨어진 동수(오지호)가 밧줄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 괴물과 해준(하지원)기나 긴 사투도 사실성이 떨어졌다. 캐릭터 중에는 송새벽과 박철민의 활약이 컸다. 약방 감초처럼 적절할 때마다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비중 있는 오지호와 안성기보다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SF  액션 장르에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스토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서사는 극의 기본이다. <7광구>에는 그 기본이 없다. 석유시추선에 오르게 된 인물들의 사연도 없고, 괴물의 탄생 배경도 시간 설정이 헷갈렸다. 해준과 동수의 러브 라인도 약했고, 위기 대처 상황에서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 준 캐릭터의 표현도 악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기 캐릭터를 일관되게 표현해야 한다. 표현의 결과로 괴물은 괴물다워야 하고,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 한다. 불사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위기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보여 주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7광구>의 위기는 그저 쫓고 쫓기는 위기일 뿐, 위기를 통한 인물의 캐릭터 표현과 극적인 긴장감을 몰아가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장르 영화의 승부처가 되어야 할 컴퓨터 그래픽도 엉성했다. 해준과 동수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게임의 배경처럼 어색했다. 나는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좋은 편이지만, 서너 번은 '저건 정말 CG 티가 너무 나는구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론! <7광구>는 실망스러웠다. 영화 지식이 없어 실망의 원인을 분석할 순 없다. 그저 아쉬운 감정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실망의 감정을 나열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인가? 아니다. 질문 하나가 생긴 것이다.
"삶을 살다가 어떤 것에 실망하게 될 때, 어떡해야 하는가?" 흔히들 얘기하는, 실망을 줄이는 법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기대감이 주는 떨림과 흥분은 긍정적인 것이니까.

실망을 느낄 때의 대처법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실망을 줄 만큼 시시한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시시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는 감탄을 줄 만한 대단한 것들도 많으니까. 시시한 것을 만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조금씩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든지, 안목 있는 이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검색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에이 한국 영화는 역시 별로야'라고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다. 방금 보았던 영화가 시시했을 뿐이다. 부분의 특성을 전체의 특성으로 착각할 때, 우리는 편협해진다. 전체에 대한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이 복합적인 것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새로운 최신의 것이 항상 가장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교훈도 기억하자. 감탄할 만한 대단한 영화를 찾는다면 신작 개봉관만을 찾을 일이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명작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가슴을 뒤흔들 대단한 책을 찾는다면 신간 코너를 뒤적일 게 아니라 인류사라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온 고전 한 권을 읽는 게 나을지도.

시시한 영화 하나를 먼저 접한 자로서, 누군가에게 "이것은 시시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시시한 것에 투자한 내 시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이 글 때문에 '7광구'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상황일까? 인생은 그렇다. 예측불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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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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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09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11.08.11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지가 되어주는 피드백, 감사합니다. ^^
      계속 이런 글을 주시면 제가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게서 배운다고 하시지만, 저도 이런 댓글을 통해 많이 배운답니다.

  2. 혁군 2011.08.09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 보셨군요...

    어떤이는 감독이 배우들한테 무릎꿇고 사죄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배우였다면 밤에 잠도 잘 안올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검색 필수 인것 같습니다.

    몇분의 검색으로도 몇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 보보 2011.08.11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 안 보셨군요. ^^
      보시고 나면 나름 이야기 꺼리가 생겨나긴 합니다.
      저는 그 유명했던 <복수혈전>도 극장에서 보았는 걸요.
      말이 나온 김에 언젠가 <복수혈전> 관람기도 써 봐야겠습니다.

      아내와의 자전거 여행, 잘 다녀오세요.
      의미 있는 시간, 특별한 추억이 되길 바랍니다.

  3. 혜주 2011.08.10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토욜 중학생 친구들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어카지요?
    한 학기에 한 번씩 가는 문화교실인데~

    • 보보 2011.08.11 0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혜주님, 어려운 질문을 주셨군요.
      한 학기에 한 번이니, 이왕이면 재미 만점이면 좋을 테고...
      그런데 예매율 1위이니 안 보려니 섭섭하고...
      중학생 친구들의 정서를 알지 못하니, 저도 잘 모르겠군요. ^^

      위 댓글의 혁군님처럼 먼저 보신 분들의 리뷰를 검색하여
      몇 개라도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는 건 어떨까요?
      무엇보다 극장에 간다는 것 자체로 기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4. 우리두리 2011.08.14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전까지 가장 기대하고 있던 영하인데 말이죠. 하지원도 나오고..쩝.
    리뷰평점을 검색한 신랑의 강력반대로 7광구는 저편으로 훨훨~ 날아가고
    대신 시간대가 맞는 퀵을 지난주에 봤지요.
    아무런 기대도 없이 본 영화인데 뜻밖에 깔깔거리며 재밌게 봤습니다.
    김민기등 해운대에서 뭉친 배우들이 또 뭉쳤드라구요.
    근데 충격적인 사실은 퀵과 7광구를 만든 감독이 같드라구요. 오...
    항상 성공도 항상 실패는 없는걸까요. 감독은 요즘 울상을 지을까요? 초연해있을까요?

    하지만 하지원은 어쩌죠..쩝..부상도 많이 당하고 힘들었다던데..- -;;

  5. 혜주 2011.08.20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민할 것도 없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했지요.
    의외로 아이들은 포기가 빨랐고, 7광구를 보는 대신 친구들의 입소문을 믿고 퀵을 봤어요.
    유쾌했고, 중간중간 대사에서 의미심장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었답니다.
    모처럼의 야외수업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을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주에 퀵을 보았고, 오늘 세얼간이를 봤는데
    세얼간이를 아이들과 함께 보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계획없이, 사전 정보없이 갔다가 성공했습니다.
    웃으며, 눈물이 같이 흐르기도 하고
    맞어 맞어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알 이즈 웰"을 중얼거리게 될 겁니다.^^

    • 보보 2011.08.21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구의 추천에 저도 주말에 <세 얼간이>를 보았습니다.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영화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치며 관람했지요.
      아! 란초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며 잠들고 싶은 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