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난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난한 편이다. 주머니는 늘 가볍고 저축액은 전혀 없다. 
자발적 가난이기에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만족하고 행복하다. 
나는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돈이 조금 있으면 여행을 떠나며 놀거나 일 대신 공부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면 된다.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가난이 싫다고 한 것은 가난이 가져오는 상황이 싫다는 의미다.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활고는 어머니를 바쁨으로 몰아갔다. 
아침에 나가셔서 저녁에 돌아오셨다. 
그런 매일의 바쁨이 어머니에게 육체적 고단함을 주었으리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는 잠시 누워 있곤 하셨다. 피곤을 그렇게 달래셨을 것이다.
참 아쉽게도 나는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난이 준 상황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 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땐 내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시가 서글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것은 내 생활이었고, 누구나 자기 삶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한 것은, 상황은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인간은 항상 상황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셨다. 
아쉽게도, 석아!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퇴근하실 때, 닭발이나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초등학생 1학년 때였나? 내 생일날, 우유와 100원짜리 런치빵을 사 주셨던 기억도 있다.
소박한 생일선물이었지만 그 런치빵 그리고 순대와 닭발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셔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께 내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엄마 피곤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끊지 않으셨다. 
방과 부엌 사이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나는 종알종알거리며
나는 하루 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는 잘 들어 주셨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어머니와의 우정이 생겨난 것은 사랑의 힘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사건은 내가 '사랑의 꽃다발'이라 부르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집 근처의 영수 학원에 다녔다.
나는 예쁜 수학 선생님을 좋아했고, 스승의 날에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께 꽃을 사 달라고 졸랐고, 당신께서는 알겠다고 하셨다.
기억에 의하면,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니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오셔야 할 시각에 오지 못하여 나는 울상을 짓고 학원에 갔다.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다. 꽃다발을 들고서.

기억이 맞다면, 나는 숨어 버렸다.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걸어 오신 것도 아니고, 일하시던 모습으로.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시고 오셨던 것이다.
내가 수학 선생님을 그저 치기어린 수줍음으로 좋아했다면,
어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은 '꽃다발' 처럼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께, 꽃다발 주인공은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어머니와의 우정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던 봄날에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로 가셨다.
이것만큼은 애석하고 슬프고 가끔씩은 억울하기도 하다. 
슬플 때 기대어 울 가슴이 없다는 사실이
기쁜 일이 있어도 그 소식을 나눌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 때는 어머니를 어찌할 수 없는 가난 속으로 밀어넣은
아버지의 무책임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원망은 지혜롭지 못한 일임을 깨달았다.
아주 가끔은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일이다.
어머니의 부재는 내 인생이다. 이것을 거부할 순 없다. 거부하는 순간, 
어두움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고,
민감한 대화 주제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빛이 그렇듯이 어두움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두움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면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상황을 뛰어넘고 싶었고, 성숙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두움을 걷어내고,
나의 인생 전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인생 전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과거를 온전히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내 인생을 받아들이기 노력했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혹은 받아들인 결과로 몇 가지를 깨달았다. 

- 아무리 슬프고 부정적인 사건도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 우리는 자신의 성격, 지니고 있는 질병, 잊고 싶은 과거보다 더 큰 존재이다.
-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하여 잘 알게 되면, 나도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인해 나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했고
변화의 크기만큼 나는 인생에서 동년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말할 순 없다. 그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나도 사랑 없이 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를 둔 이들이 부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절망과 슬픔에서 적응과 익숙함을 거쳐
지금은 망각과 그리움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내게는 부담감도 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 참으로 낯선 단어다.
이 말을 들으신 내 어머니는 서운해 하실까? 대견해 하실까? 궁금한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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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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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진규 2011.08.08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저미는 글 감사합니다.

    가지고 있지만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을 꺠우치게 되었네요.

  2. 2011.08.09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11.08.11 0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름다고 현명한 아내가 되실 거라 믿어지는 글입니다.
      그래요. 꼬옥 어머님의 묘소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도, 그리고 남자 친구 분도 좋아하실 거예요. ^^

  3. 김태종 2011.08.12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의 글을 읽고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습니다..
    오늘 바쁘지도 않았으면서 왠지 귀찮고 하기 싫어서
    아무 이유없이 2년여간 지속해오던 매일 전화 한 통 혹은 문자 한 번 드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11시 45분... 보보님의 글을 읽고 아직 오늘의 15분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리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물론 모두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한 일이라기보단,
    제가 언젠가 부모님의 부재속에 살아가게 될 그 날이 왔을때,
    후회를 줄이기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하는 일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든 후회보다는 .... 행동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는 보보님의 성숙한 현명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한 제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보보 2011.08.21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 이타주의자겠지요.
      이기심이 행동의 근원일 때에도 자책할 필요는 없겠지요.
      인간에게 뿌리 박힌 본성이니까요. ^^
      나는 이기적 본성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감동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종종 감동하는 까닭입니다.

  4. 김재철 2011.08.12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는 어머니의 수술이 있었습니다.
    외부 강의가 있어서 수술할때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강의 끝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더니 수술후 병실에서 살은 별로 없고 앙상한 뼈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계셨습니다.
    나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아보지 못하고
    나의 길만 보고 오는 동안 당신들은 그런 자식들을 지켜보면서 어느덧
    앙상하고 병든 육체를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시기가 되었네요.

    죄송하고 괜히 화가나는 감정이 나를 고개를 떨구게 했습니다.
    어머니를 강원도로 내려가는 기차에 모셔드리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죄인 마냥 무거웠습니다.

    • 보보 2011.08.21 2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엇보다 어머님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 드립니다.
      수술후 얼른 건강 회복하시기를! 거듭 기원합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배우자가 꼴도 보기 싫을 때 서로 존중하는 일도 힘듭니다.
      우리의 인격이 가장 성숙하는 길이
      효제에 정성을 다하고 가족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철님의 성찰과 노력에 고개를 숙입니다.

  5. 심지연 2011.08.13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날인가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는 제 안부가 궁금해서인지
    친구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가 저와 어머니의 대화를 살피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 너 진짜 감사해야해. 너희 어머니가 마음이 좋으시고 밝으셔서
    믿고 기다려주시는거야."
    그 순간 눈물이 핑~ 도는데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것 같았어요.

    • 보보 2011.08.21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는 부모님과 자녀 간의 다툼에서 자주 감동합니다.
      결국엔 부모가 자녀를 위해 먼저 양보하거나
      당신네 상황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모든 부모들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 사랑에 있어서는 대단해지신다는 말입니다.
      모든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에서
      부모님들께 죄송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아쉬운 일입니다. ^^

  6. 김소라 2011.08.16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유니컨 수업을 가려고 재혁이를 엄마네 맡겨놓았습니다.
    혹시나 몰라서 돈을 15만원 찾아서 지갑에 넣어갔죠.
    엄마가
    "지난 번 재혁이 물안경 사준 거 돈 내놔라!"
    이러십니다.
    "아... 안그래도 엄마 줄려고 찾아갖고 왔어. 그냥 용돈 하세요!"
    하고 드렸네요.
    2만원 돈이 얼마나 그리 대단하다고, 손자녀석한테 쓰는 것을 아까와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화가 났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그래도 재혁이 안 봐주신다고 하는 것 보다 훨씬 낫지 뭐...
    돈관계가 정확한 지금의 어머니는 어쩌면 저에게 너무도 현실적인 가치관을 심어주셨는지 모릅니다. 수업 마치고 집에 가서도 얼마나 설교를 들었는지 모릅니다.
    나의 종교관, 신앙관에 대해서... 아직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평가하는 듯한 말씀들.
    전 어느 정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 나가는 힘을 이야기했고,
    엄마는 끝까지 흑암과 사탄의 세력이 집안을 무너뜨리는 영적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합니다. 결코 우리는 일치할 수 없는 평행선을 걷는 사이인가. 오랫동안 회의적인 기분으로, 마음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가려는데도...
    "하루종일 재혁이 보느라 힘들었으니깐 얼른 가라!"
    고 하시길래, 서둘러 나왔습니다.
    이럴 땐... 저도 외롭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엄마'가 필요한데, 저 역시 너무도 '엄마'가 필요하네요.

    • 보보 2011.08.21 2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고 민망하긴 하지만,
      용돈을 드리신 일도, 마음을 추스린 것도
      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하는 일도 모두 잘 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매일 밤, 평온한 단잠으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가득하기를!

  7. 2011.08.22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11.08.24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는 당신이 그 날의 깨달음을 잊어 버리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그 때의 깨달음이 아득한 옛날의 일처럼 느껴질 때
      또 언제든지 달려와도 좋습니다. ^^ 누구나 그렇게 성장하니까요.

  8. 똔지 2011.09.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9. 혜주 2011.09.02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쁜일 있을 때 엄마 생각 젤 많이 나서
    오히려 슬플 때가 있습니다.
    아픈 손가락이었을 자식이어서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지금의 나를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텐데,
    얼마나 기특해하실텐데 하다보면
    목구멍이 먼저 아파옵니다.
    참 힘들게 살면서도 참 지혜로웠던 울엄마를
    세딸들은 젤 존경합니다

    • 보보 2011.08.11 0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엄마를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 불렀지요.
      '어머니'라고 말해 본 적이 없으니 이 호칭도 제겐 낯설지만,
      엄마라고 불러본지도 20년이 되었으니 이젠 엄마라는 호칭도 어색하네요.

      혜주님의 댓글을 보니 정채봉 작가님의 '백두산 천지에서'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10. 전지영 2011.09.14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는 시집을 가고 아기를 낳으면 엄마에 대한 존재를 더욱 그리워하고 알게 된다는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런가봅니다.
    시집을 가고보니... 엄마의 자리가 더욱 커지고 안타깝고 잊어가던 얼굴이 더욱 또렷해 지고...그리운 그 얼굴이 생생해 질 때마다 눈물이 나고...
    후회로 더욱 그려지는 그 얼굴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 앞에서 울지도 못할 정도로 약한 분이였는데...
    단 한번도 그 분을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했다는게 늘 가슴에 남습니다.

    • 보보 2011.09.1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그대의 댓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
      '좋은 엄마가 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네.
      곧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인 듯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던 것들을 말이지요.
      그것에 대해 후회나 아쉬움 한 번씩은 다들 느낄 테지요.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대가 좋은 엄마가 됨으로 어머니를 빛내 드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