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알랭 드 보통에게 사인을 받다

카잔 2011. 10. 3. 15:02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글빨에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작가(여기서 말하는 작가는 소설가)들이야 대개 글빨이 뛰어나지만, 책의 저자들이 모두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요. 인문 사회과학 서적의 미덕은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 심오한 깊이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심오한 깊이와 유려한 문장력을 모두 지닌 저술가들이 있습니다. 나는 2010년 5월, 내가 뽑은 글빨 최고의 작가(여기서 말하는 작가는 작가 수준의 글빨을 갖춘 저술가)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찰스 핸디, 말콤 글래드웰 그리고 구본형 선생이었습니다.
( '내가 뽑은 최고 글빨의 작가' 링크 http://www.yesmydream.net/1004 )

눈이 번쩍 뜨인 기사

9월 22일 중앙일보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온다는 거죠. 단박에 와우, 라는 감탄이 튀어나왔습니다. 그의 책 『불안』을 읽으며 그의 표현력과 혜안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잘 써서 질투가 났던 것입니다. 그런 질투로 나의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망각을 잘하는 사람이라 금새 잊어 버립니다. 아쉽게도 질투는 질투일 뿐 나의 삶으로 이어가지 못했던 걸 이제와 후회합니다. 내일이면 이 후회와 아쉬움의 감정도 잊어버리겠지요. 허허.

알랭 드 보통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시간을 내어 가 볼 테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wow4ever MT 일정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와우팀의 일정과 겹친 것에 크게 개의치 않은 나를 보며 신기했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조정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을 텐데 말이지요. 와우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느꼈지요. 내 인생의 우정과 선생을 만난 곳이 와우스토리연구소입니다. '알랭 드 보통'보다는 내게 중요한 존재지요.

물론,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사인회에서 만나는 것보다 실제 단 5분이라도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더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냐구요? 그래야 가지 못하는 나를 달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그를 만난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MT 일정이 한 주 늦춰진 것입니다. MT로 잡혀 있던 일정이니 나는 시간을 듬뿍 내어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홍대 상상마당 앞 거리에서 와우북페스티발 거리행사도 있었기에 그의 사인회 시각보다 무려 3시간 전에 홍대에 도착했습니다.

아쉬움, 알랭 드 보통을 만난 소감

그를 만난 소감을 아쉬움입니다. 악수도 못했고, 눈도 한 번 못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렇습니다. 3시간 전에 도착한 나는 와우북페스티발 거리행사를 돌아보다 실망했습니다. 그저 책 염가판매 행사였고, 다양한 문화행사는 없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여 부스에서 책을 사는 것을 생각하면 딱입니다. 둘러보다가 책 몇 권을 사고 나니 가방까지 무거워져 몸도 지쳤습니다. 이럴 땐 홀로 카페에 글을 써야 에너지가 채워집니다. 한 시간 동안 카페에 있다가 시간에 맞춰 사인회장에 갔었지요.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더군요.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ㄹ'라를 여러 개 이은 것처럼 길고도 꼬불꼬불했습니다. 나는 사인 받기를 포기하고 멀리서 사진이나 찍어댔습니다. 보통의 사진을 찍었지만, Zoom 기능이 없는 카메라를 탓할 뿐이었습니다. 멀어서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더라구요. 그 때 와우연구원 한 명이 홍대에 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도 알랭 드 보통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그의 시간을 절약해 주기 위해 지하철 역까지 마중 나가 함께 사인회가 진행되는 장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인을 받으려는 인파의 줄이 확연하게 줄어 있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사인 속도가 굉장히 빨랐던 것입니다. '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받아?' 하고 혀를 내둘렀던 저였는데, '오잉? 충분히 받을 수 있겠는걸' 하며 줄을 섰습니다. 그만큼 그는 빨랐습니다. 사인을 받고 나니 빠를 수 밖에 없더군요. 이게 전부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창조되는 알랭 드 보통의 사인


사인을 받고 나오는데 5초가 걸렸으려나? 하지만, 악수를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진하게 눈을 마주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뒤에 오는 분들을 배려하느라(내가 무슨 테레사 수녀도 아니고) 행사 진행을 생각하느라 (내가 무슨 스탭도 아닌데.... 쩝) 서둘러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사인을 받고 나와 아쉬움에 나의 뒷사람들이 사인 받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들은 알랭 드 보통과 짧은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눈치껏 악수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사진을 찍은 분도 있네요. 에고, 부러워라!


나와 와우팀원은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아쉬워했지요. 지금도 아쉬움이 물씬 찾아오네요. 돌이켜 보면, 늘 이딴 식입니다. 부끄러워 못 다가서고, 여러 상황을 생각하느라 내 소원을 펼치지 못하는 제 어리숙한 모습 말입니다. 허허. 악수는 둘째치고 눈이라도 1초 맞출 수 있었는데 무어 그리 마음이 분주했는지, 참으로 아쉽습니다. 내가 못했던 악수와 눈맞춤을 제대로 하는 독자들의 열정을 부러워할 뿐이라니. 아이고야!

이렇게 눈이라도 맞추어야 했는데... 허허.


그를 향한 부러움 그리고 허허

알랭 드 보통을 향한 부러움도 들더군요. 나도 그도 책을 낸 것은 똑같지만 그 영향력은 하늘과 땅 차이! 물론 나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같은 일을 해도 탁월하게 잘 해내는 그가 부러운 거지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이신 와우 연구원 P님께 이 일에 대해 메일을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표현했었지요. "나와 알랭 드 보통의 차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P님의 관계랄까요." P님이 누구인지 모르시는 여러분들에게 이 비유가 와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부러움으로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아마도 오늘 뿐일 거예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나는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기보다 저 푸른 가을 하늘에 유혹당하기 십상이니까요. 하지만,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가득합니다. 마음 만으로 되는 일이 없음을 알기에 실천의지를 다잡아 보지만, 아무래도 가을이 지나고서야 진득하게 앉아 있을 것 같습니다.

허허. 알랭 드 보통을 만난, 아니 슬쩍 스쳐 지나간 그 날을 생각하면 이런 헛웃음이 나옵니다. 허허. 자꾸만 나오네요. 왜 이런 웃음이 나올까요? 나도 참 한심한 놈입니다. 이런 내가 그래도 좋으니까 말이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허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