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자기 입맛을 아는 게 중요하다

카잔 2011. 12. 7. 01:40

'무슨 고무 냄새도 아닌 게, 고약하구만.' 폼 한 번 잡아보려고 자주 와인을 마시지만, 새로운 와인을 오픈할 때마다 느끼는 솔직한 나의 심정은 우엑, 이다. 저렴한 와인이어서 그런가 하여, 돈을 조금 더 들여 3만원~7만원 대의 와인을 시도하고 있다. 대폭 할인하는 와인 위주로 구입하니 실구매가는 1만원~3만원대이다.

'샤또 기봉 레드'가 무난하게 인기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무 냄새였다. 나에게는 가격 대비 꽝이다. 나는 '빌라 M' 같은 스위트한 것만 어울리는가, 하고 유쾌하게 절망할 즈음 만난 것이 '피노 누아'다. 피노 누아는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와 함께 레드 와인의 대표 품종이다. 포도 품종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 실험적으로 마시다가 만난 게다.

고무 냄새는 아마도 레드 와인의 타닌에 대한 반응인 듯한데, 피노 누아는 타닌이 적고 섬세한 맛을 낸다고 한다. 타닌이 가장 강한 까베르네 소비뇽이 내 입맛에는 별로였던 이유도 이해하게 됐다. 희소식이다. 내 입맛에 맞는 포도 품종 하나를 얻었으니까. 어제는 피노 누아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다가,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맛 본 '리슬링'이 내가 첫 번째로 만난 '내 입맛 와인'이었다. 화이트 와인의 주요 품종은 샤르도네, 리슬링, 소비뇽 블랑이다. 그러니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에서 각각 하나씩 선호하는 품종이 생긴 것이다. 피노 누아와 리슬링.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이 생겼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무엇이든 자기 입맛에 맞아야 한다. 오늘 이수영 선생1)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물었다. 어떻게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 좋으냐고. 선생의 답은 이랬다. "자기 삶의 필요와 연결된 것부터 공부하라." 공부도 자기 입맛에 당기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이다. 공감했다. 

훌륭한 지식을 지녔더라도, 내가 전혀 무관심한 분야의 선생이라면 배움의 효과는 떨어진다. 배움은 학습자의 마음이 열릴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선생, 리더, 부모는 동기부여의 달인들이다.) 그러니 공부를 할 때에도 나에게  끌림을 주는 분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이 좀 발칙하지만, '내 입맛 선생'을 만날 때 공부가 즐거워지고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선생을 모실 수 있나? 한 가지 방법은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 분야의 중요한 인물을 소개한 쉬운 입문서를 읽으며 끌림을 주는 이를 가려내는 것이다. 철학의 경우라면,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가 제격이었다. 사상보다는 인물 중심의 기술이니 철학 문외한이 읽기에 좋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나를 흥분시키는가? 지적 자극을 주는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는가? 이런 질문들에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이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선발위원회는 오직 나 뿐이다. 이렇게 철학자 몇 분이 걸러지면, 그들에 관한 책이나 주저를 읽으며 내가 더욱 파고들만한 분인지 가늠하면 된다. 공부도 와인 음용과 다를 바 없다. 자기 입맛에 맞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구구절절 말하고 있으려니, 이를 더욱 멋있게 표현한 구절이 떠올랐다. "철학사를 뒤적여 가장 매력적인 철학자 한 ‘분’을 골라라. 그 ‘분’에 관한 책 두 권을 정독하여 그 ‘놈’으로 만들어라.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좋은 스승은 반드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함께 할 수 있다." 캬,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내 입맛 선생'을 만나게 되면, 당분간은 그에게 몰입하자. 눈에 보이는 지점까지 다다르면, 다음 목표 지점이 보일 것이다. 나는 여러 권의 철학 입문서를 읽으며 내 마음을 치고 들어온 철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흄, 칸트, 니체, 듀이, 러셀이다. 이들을 조금이라도 공부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내 세계관이 정교해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내 입 맛에 맞는 포도 품종을 알게 되니, 와인을 즐기게 되었다. 에머슨은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그러니 보다 많은 실험을 할수록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말했다. 모든 공부 역시 하나의 실험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실험이 필요하다. 실험을 많이 할수록 자기를 살리는 공부꺼리를 찾게 될 것이다.


1) 가수 이수영이 아니라, 철학자 이수영 선생. '인문팩토리 길'에서 현장을 살리는 인문학을 연구하는 일이 직업이다. 『미래를 창조하는 나』를 재밌게 읽어 2011년 말에 출간된 『명랑철학』도 읽어볼 계획이다. 강연이 재밌었다. 선생의 따뜻함도 느껴져서 좋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