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그녀를 환경운동가 혹은 사회운동가로만 알아왔다. 인권 문제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4년에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한 '아룬다티 로이' 말이다. 그녀를 환경과 연결시킨 것은 2003년에 『생존의 비용』을 읽었기 때문이고, 사회운동가로 생각한 것은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에세이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양심적 지성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비판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고종석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최근 10년 사이에 미국의 주먹(군사적 신보수주의)과 보자기(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가장 열정적으로 펜을 휘두른 논객"으로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과 같은 원로들과 함께 한 세대 젊은 아룬다티 로이를 꼽았다. (『고종석의 여자들』아룬다티 로이 편)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작가이기도 '했다'. 1997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책 『작은 것들의 신』은 그녀가 쓴 유일한 소설이고 인도 여성으로는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십년 전의 나였더라면 그녀의 정치 에세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를 읽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려 한다. 요즘엔 자꾸 문학 작품에 관심이 간다.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가로 출발했지만, 그녀의 소명은 사회운동에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쓸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지만, 현재까지는 정치적 에세이만 써왔고 사회 운동에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종석은 글 후반부에서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였는데, 그녀의 활동을 균형 있게 판단하도록 돕는 좋은 글이었다.)

2.
나의 독서는 조선의 역사서에서 출발하여, 피터 드러커의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계기로 경영과 실용서로 이어졌다. 역사서는 고작 몇 권을 읽은 수준이니 내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경영학과 실용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많은 기간 동안 몰두했던 분야는 사회과학과 철학이었다.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남독 수준이긴 하다.)

강준만 교수의 책을 즐겨 읽었고, 월간 <인물과 사상>을 애독했다. 김규항, 진중권, 홍세화선생의 책을 한 두 권씩 읽기도 했다.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와 노암 촘스키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열광하며 읽었던, 그리고 미셸 푸코, 보드리야르의 책을 만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입사하면서 나의 독서는 다시 경영서로 전환되었다.

철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지만, 회사 생활에 필요한 책들을 먼저 읽는 경우가 많았다. 서른 즈음, 서준식의 『옥중서한』 몇 장을 읽고서 강렬한 지적 희열을 맛보았을 때에도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을 만큼의 여력은 없었다.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 둘 뿐이었다. 그 '언젠가가'가 아주 오랜 훗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슬픈 상상을 하면서.

서른이 넘어서는 자기다움과 인생의 지혜를 다룬 책을 많이 읽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나 파커 파머의 에세이를 좋아했고,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의 책도 간혹 읽었다. 그리고 삼십 대 중반인 지금에 이르러, 나는 문학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3. 
본격적이란 것이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작가별 혹은 나라별 문학 작품을 연달아 읽는 것 뿐이다. 혹은 세계문학전집을 한권씩 읽어 나가거나. 스토리를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제의식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남다른 점으로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깊이가 있는 편은 아니어서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

나라별로 읽는다는 것은 이런 식이다. 치누아 아체베(1930), 월레 소잉카(1934), 치마만다 아디치에(1977)를 연달아 읽기. 이들은 나이지리아 문단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이다. 월레 소잉카는 1986년 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연설에서 치누아 아체베에게 찬사를 바쳤다. 모두 아프리카 문학을 공부할 때 놓칠 수 없는 작가들이다.

어제 도착한 예스24 택배상자에는 일본 소설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마크스의 산』,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2004년작 『7월 24일 거리』,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 그리고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등의 작품이 수록된『일본 대표작가 대표 단편선』을 주문했었다.

나의 독서는 경영학에서 출발하여 철학과 사회과학을 거쳐 이제 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명을 추측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산만하다. 나의 관심사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조바심은 없다. 흥미진진하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두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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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지연 2012.02.15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 글을 읽고보니 아직 짧지만 저의 독서여정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보보님처럼 한 줄로 명쾌히 정리할 수가 없네요. ^^;;
    (나의 독서는 경영학에서 출발하여 철학과 사회과학을 거쳐 이제 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만한 독서는 둘째치고 각 분야별로 읽은 책의 수도 적고, 깊이도 부족해서
    독서여정이라기 보다는 독서소풍? 산책? 정도... 하하 ^^

    -보보님께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1. 심리학 입문서
    2. 지식을 단련? 하는 방법에 관한 책
    3. 조선역사에 관한 책[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괜찮을까요?

    • 보보 2012.02.15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권합니다.
      의미심장했던 10가지 심리실험을 다룬 책입니다.

      2.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식의 단련법』이 좋았습니다.
      독서 뿐만 아니라 신문 스크랩, 인터뷰 등 다양한 지식 탐구 경로를 소개했지요.
      인터넷 시대의 방법론들이 없음은 아쉬운 점입니다.

      3. 박영규 선생의 책이 가장 유명하지요? ^^
      나는 한 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 '왕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기를 즐겼습니다.
      리더십, 권력 투쟁을 통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등이 내게 중요한 주제였기에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나중에야 알았지요.

      조금 까탈스럽게 군다면, 왕조에 대한 역사 뿐만 아니라
      민중의 역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한 나라의 왕조 이야기를 읽으면 더욱 좋겠지요. ^^

      참고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의 테마는
      지성사, 문화사, 정치사인 듯 합니다. ^^

  2. 심지연 2012.02.16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 책을 고를 때 입문서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입문서에서 더 나아가려면 어떤 기준으로 책을 살펴야
    할까요?

    • 보보 2012.03.02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게 이해되고 더 나아갈 이론의 기초를 다져주면
      그것이 자신에게 입문서가 되는 것 아닐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각론에 치우치지 않고
      개론을 포괄적으로 쉽게 다뤄주는 책을 입문서라 할 수 있겠지요.
      좋은 입문서는 참고문헌과 더 공부할 책들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요. ^^

  3. 심지연 2012.02.1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해주신『지식의 단련법』을 읽고 있는데 입문서에서 전문서까지
    접근하는 방법이 나와있네요. 입문서가 참 중요하네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학문을 시작할 때 먼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라고 하는데 입문서를 읽는다는게
    그 과정인것 같아요.

    • 보보 2012.03.0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를 들어, 일본 문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합시다.
      먼저 일본 문학의 특징과 흐름을 조사하고
      시대별로 놓치지 말아야 할 작가와 작품의 얼개를 그려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견해에 경도되지 않을 수 있고
      하나의 작품을 보다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