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뜻밖의 시간이 준 행복

카잔 2012. 3. 14. 10:42

1.
독서강연을 시작하며 양해를 구했다. 급하신 일이 아니시면 20분 늦게 끝마쳐도 괜찮으시냐고. 이왕 오신 김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청중의 반응을 영민하게 알아차리는 편이라 여러분들이 강연을 시원찮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알아서 정시에 마치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2.
강연은 양해를 구한 대로 예정된 시각보다 20분을 더하여 9시 50분에 끝났다. 한 두 분이 강연장을 빠져나가셨다. 그리고 뜻밖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자리에 앉아계신 열 두 분이 번갈아가며 내게 질문을 하셨고, 나는 질문들에 정성껏 답변 드렸다. 다행하게도(^^)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질문하셨다.

강연 때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를테면 통합적인 사유의 중요성과 방법론, 역사 공부의 가치, 독서노트 작성과 독서시간의 균형 맞추기, 책을 끝까지 읽으려는 강박관념 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다. 활발한 질문을 통해 청중들이 강연을 열심히 들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강연장을 나와야 하는 10시 30분까지 질문들이 이어졌다. 강사로서 행복했다.

3.
질문은, 5분만 시간을 내어줄 수 없냐고 정중하게 묻는 남성 분과 근처의 카페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는 유명가구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독서경영 전문가를 꿈꾸었다. 열정은 뜨거웠고 태도는 정중했다. 꿈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했다. 꿈을 이루기를 기원드리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했고 응원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답변보다는 그 늦은 시간에 차 한 잔의 시간을 요청한 용기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4.
독서경영전문가와 헤어진 시간은 11시였다. 7시에 시작되어 9시 30분에 종료하기로 예정된 강연이었다. 이 정도로 많은 질문을 받게 될지는 몰랐다. 40분 동안의 질의 응답과 30분의 짧은 미팅은 내게 뜻밖의 시간이었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뜻밖'이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친한 친구처럼 기분이 좋았다.

'뜻밖'은 전혀 생각이나 예상을 하지 못함을 말한다.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혹은 당혹스럽게 만들 만한 단어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선사해 주는 단어다. 새로운 불행 혹은 새로운 행복. 하지만 우리는 '뜻밖'이라는 단어보다 큰 존재다. 불행이 다가오더라도 능히 넘어설 수 있고, 행복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에 취해 방종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아무리 논리가 멋져도 뻔한 것에는 논리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나왔다. 냉장고 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의 결함이 없지만, 이를 두고 논리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당연하니까. 뜻밖의 주장인데도 논리가 뒤따라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논리적이다고 말한다. 멋진 논리는 '뜻밖'의 주장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5.
'뜻밖'의 일도 내 인생이다. 뜻밖의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인생의 관대함에 감사해야겠다. 혹 내가 관대함을 얻을 만한 일을 했다면, 그것을 자주 반복할 것이다. 뜻밖의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겠다. 나의 어떤 불찰이나 나쁜 마음이 공모했을지도 모르니, 그것을 파악하여 내게서 끊어낼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어제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라 기분이 좋다. 이제 다시 빠져들 시간이다. 오늘이라는 현재 속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