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다시 책을 쓰기 시작하다

카잔 2012. 3. 17. 10:07


1.
글을 쓰는 공간은 공장이기보다는 창작소다. 시간이 주어지면 물건을 팡팡 찍어내는 공장처럼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창작의 소산이다. 창작이란 말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이 묻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을 특정인만의 영역으로 성역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가 힘겹다는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모든 인생에는 책 한 권 즈음이 될만한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영감이 떠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을 포함하여) 날마다 기계적으로 글쓰기에 임하는 사람이 직업 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쉽지 않은 '글쓰기'를 날마다 해야 한다는 점이 작가를 꿈꾸는 이로서의 어려움이다. 글쓰기 대신 '일'을 넣으면 그대로 직장인의 애환이 된다. 쉽지 않은 일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이라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직장 생활을 날마다 해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직장인들의 힘겨움이다. 글쓰기와 직장생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2.
그곳은 나의 글쓰기 공장이었다. 직장생활에도 술술 풀리는 날이 있듯, 나의 글쓰기도 고속 항해 중이었다. 나는 그곳 카페데베르에만 가면 정말 신나게 글을 썼다. 2010년 가을과 겨울, 그 즈음엔 정말 그랬다. 물론 직장생활이 술술 풀리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물이지 그런 손쉬움이 직장 생활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삶은 고해다. 하지만 의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고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가 술술 풀린 것도 그 시절의 호사였을 뿐이다. 수개월의 호사 덕분에 나는 『명랑인생』이란 책을 퇴고까지 거의 마치고 탈고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내일 출판사에 보내볼까, 하는 정도까지.

3.
원고는 출판사에 보내지지 못했다. 이튿 날, 하드디스크가 지워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는 명데이터에서 이런저런 복구 시도를 했지만, 결국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복구 의뢰를 하고 최종 통보를 받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가졌던 지푸라기보다 가벼웠던 희망마저 내려놓아야 했다.

탈고 직전이었던 원고 뿐만 아니라 집필 중이던 여러 편의 원고와도, 나는 결별해야 했다. 결별은 힘겨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가슴 아팠던 실연의 경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2011년 1월 17일에 일어난 일이고, 그 한해 동안 나의 글쓰기 공장에도 가지 못했고, 날려 버린 원고들에 대해 다시 글을 쓸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블로그의 글이 내가 쓴 글의 전부였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책 원고를 조금씩 진전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한번 썼던 거니까 다시 쓰면 속도가 빠르니 괜찮다고. 혹은 이것 역시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될 거라고. 그들보다 김영하의 단편 「내 사랑 십자 드라이버」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람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서로 다름을, 그것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판타지 형식으로 보여준다.

4.
열 다섯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것 이후로 내 삶에 또 하나의 거대한 단절이 되어버린 그 일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의 도움이었다. 2011년 말, 나는 새해가 정말 새로운 해가 되기를 바랐다. 그저 달력의 연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다시 나의 글쓰기 삶에 변화가 있기를 소망했다. 한 해 동안 책쓰기를 조금도 진척시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싫었다. 

일년 단위로 해가 바뀐다는 사실은 소설의 새로운 장(章)이 시작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2011년이라는 장은 이제 끝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과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일은 내게 달린 일이라는 생각은 모두 내가 그 일을 극복하며 끌어올린 것이 아니다. 그저 세월이 지났고, 그 시간들이 나를 얼마간 치유했고, 다시 그런 세월을 보내기는 정말 싫었다.

5.
그래서 올해 초부터 책을 쓰고 있다. 턱하고 막힐 때도 있고 큰 과업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일정이 많았던 까닭 뒤에 회피하고 싶은 은밀한 마음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책 출간에 도전하고 있다. 계약할 때의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러니 매일매일 열심히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두고 글쓰기의 힘겨움이라고 하는가 보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직장인들이다. 쉽지만은 않은 직장생활을 매일매일 해내고 있는 그들의 삶에 비하면, 나는 너무 연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 고단함이 느껴지는 직장생활이지만, 이것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위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돈을 주니까 하는 일이지, 라고 치부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을 얻기 위해 테헤란로를 역동적으로 오가는 직장인들을 쳐다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