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먼 곳에서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용산역으로, 전라도 광주역으로, 다시 전남대학교로 이동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강연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다행스러운 것은 이동하는 열차는 좋은 업무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KTX 안에서 글을 쓰려던 계획이었지만, 교육 담당자가 새로운 주제의 강연을 부탁했기에 슬라이드의 구성을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두 번의 강연은 잘 마쳤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고 슬쩍 훑어본 피드백도 만족스러웠다. 교육 담당자와의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온 지금은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또 하루가 지난 셈이다. 글을 쓰지 못한 채 지나가는 시간들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쌓인 것들이 많아지면 조바심이 된다. 꿈을 향하여 노력한 시간들이 그저 흘러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2.
나는 알고 있다. 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해서 글쓰기 진도가 척척 나가는 것은 아님을. 산만하게 이런저런 일에 조금씩 시간을 주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기 십상이고, 글을 쓰기 위한 마음가짐에 신경쓰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생각한 대로 나의 몸을 컨트롤하지 못함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의 글쓰기가 힘차게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 탓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기묘하고 불쾌한 일이다. 그토록 고대했던 일정 없는 날을 맞았으면서도 뜻하는 대로 하루를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마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얼른 헤어지고 싶고, 홀로 있으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역설적인 감정처럼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글쓰기 특히 출간을 위한 쓰기는 홀로있음과 함께있음의 조화를 맞춰가는 일보다 어렵다. 일정이 바쁘면 일정 탓을 하고, 겨우 시간을 만들어 내면 준비 부족을 염려하느라 쓰지 못한다.  

3.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하고 있다"는 말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직장 생활을 하느라 글쓰기를 못한다는 말이 하나의 예가 될 텐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상황이 되어도 글쓰기에 매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진정으로 열망이 크고 간절하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하는 바를 조금씩이라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다, 바쁘다를 연발하면서도 카톡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거나 지인이 찾아오면 30분 정도의 시간을 내어 수다를 나누는 직장인들을 신기하게 여기곤 했다. 지금은 신기하지 않다. 나도 그러고 있으니.

둘째, 직장 생활이라는 상황이 어떤 제약을 준다면, 하루 온종일의 시간 역시 어떤 제약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은 나름의 묘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시간이 넉넉할 때가 되면 한 시간 후로, 혹은 오후로, 심지어 내일로 미룰 수 있다. 또한 집중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일에 오랜 시간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모처럼만의 여유 시간에는 정작 그저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 낮잠이나 자고 싶기도 하다.

4.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도 있다. 회사에 가지 않는 휴일이라도 일주일 내내 아이를 돌보느라 수고한 아내의 역할을 잠깐이라도 대신해야 하고, 가족들을 위해 외식이나 나들이를 떠나기도 해야 한다. 자기실현의 여정에서의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의 역할 완수는 직장 생활 못지 않은 커다란 장애물이다. 하지만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치는 자기실현만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섬기는 이타주의 역시 아름다운 가치다. 

5.
꿈을 실현하고 싶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변명을 내려놓고 매일 조금씩 실천해야 한다. 실천으로 이어가지 않는 다짐을 거듭하는 것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지금 당장 시간을 투자하고 몸을 일으켜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못한다면 꿈도 우리를 위한 전진을 포기할 것이다. 

지금 당장,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무조건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면,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두고 꿈을 위해서만 매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상황은 항상 여의치 않고, 누구에게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만 신체적 에너지와 체력은 노력한다면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희소식이다.

6.
작가를 꿈꾼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습작을 시작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앤서니 트롤로프처럼 자신만의 규율을 세우고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 그는 "규칙적으로 하루에 7페이지씩, 한 주에 정확히 49페이지의 원고를 작성했다. 아침에 소설 하나를 완성했어도 새 종이 위에 다음 책의 제목을 적고 하루 양을 다 채울 때까지 쉴새 없이 써내려 갔다."

트롤로프에게 시간이 많아서 가능한 일은 아니였다. 작가가 되려는 노력은 우체국에 근무하면서 진행되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온전히 출판사에 보여줄 만한 글만 쓸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나는 우체국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을 써야 했다. 즐겁게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면 나는 얼마든지 게을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라는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몇 가지 규칙들을 세워 기꺼이 나 자신을 속박시켰다."

7.
규율은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규율을 지키는 훈련을 스스로 감행해야 한다. 비전가들에게 열정이 중요하듯, 훈련의 터널을 통과하는 일도 중요하다. 훈련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까지도 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터널은 어둡고 생각했던 것보다 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터널은 반드시 끝난다. 그곳에는 빛이 있다. 그리고 필요한 훈련을 묵묵히 해냈던 과정이야말로 지름길임을 발견할 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꿈꾼다면, 바로 지금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상황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상황 때문에 시작하지 못한다는 말은 상황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말에 불과하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한다.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라, 상황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을 탓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자들이 꿈을 실현할 것이다. 특정한 상황이 우리의 실천을 돕기도 하지만, 자신의 열정과 의지로 불리한 상황도 뛰어넘는 이들이 꿈을 실현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