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위대한 작가들

김영하 읽기를 시작했다

카잔 2012. 3. 13. 11:52

1.
김영하 제.대.로. 읽기를 시작했다. 2010년 쏠비치에서의 여유로운 휴가는 김영하 소설로 인해 풍성했다. 아니, 그의 소설이 준 감탄만 떠오를 정도다. 「크리스마스 캐럴」, 「보물선」,「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 나를 열광케 한 작품들.

2.
내게 있어 제대로 읽기란, 차분한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흥분했으니 차분해져야 한다. 그래야 서두름에서 오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을 마구 읽어대는 남독 습관을 제어하여 나름의 순서대로 생각하며 읽어나가려면 차분함이 필요하다.

그의 전작을 읽되, 마음에 꽂히는 순서가 아니라 출간된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사실 그가 작품을 썼던 순서대로 읽고 싶지만 단편의 경우는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여 출간되기에 단편 하나하나를 언제 썼는지 알기 어렵다. 단행본의 출간순서로 읽을 수 밖에 없다.

'김영하 제대로 읽기'는 열광케 한 작가에 대한 예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감탄하고 싶고, 그의 작품을 통해 사유하고 싶은 욕심일 뿐이다. 몇 달이 걸리더라도 나의 시간을 주고서 대신 그의 표현력, 상상력, 통찰력을 얻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탐심이다. 김영하의 소설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넘쳐난다.


3.
김영하는 1995년 계간지 『리뷰』에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김영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린 그의 첫 단편은 「호출」을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2012년 3월까지 그가 쓴 소설은 단행본으로 10권이다. 단편집 4권과 장편소설 6권.

1996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7 「호출」
1999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001 『아랑은 왜』
2003 『검은꽃』
2006 『빛의 제국』
2007 「오빠가 돌아왔다」
2007 『퀴즈쇼』
2010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2012 『너의 목소리가 들려』

4.
어젯밤, 그의 데뷔작 「거울에 대한 명상」을 읽었다. 그도 작가 생활을 하며 더욱 성장했을 테니 데뷔작은 신인의 어설픈 구석이 있겠지. 이것이 책을 읽기 전 나의 기대성과(?)였다. 나도 열심히 쓰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하는 어떤 희망을 그의 데뷔작에서 찾아보고 싶은 속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기대성과는 빗나갔다. 박살났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단편의 어느 대목도 어설프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감탄할 뿐이었고 이러니 당선되었구나, 하는 수긍만 할 뿐이었다. 내 속셈도 좌절되었다. 김영하는 그냥 신인이 아니라, 초대형 신인이었다. (민망하다. 내가 대한민국 작가를 얼마나 안다고... 이런 표현을 쓴단 말인가! 또 우습다. 그렇다면 외국 작가는 제대로 알고 있긴 한건지... 하하.)

5.
「거울에 대한 명상」은 성(姓)적인 장면이 많아 흡입력 있게 읽다보면(나는 남자다), 소설의 묵직한 주제를 만나게 된다. 소설은 나르시시즘을 다룬다. 물에 비친 자기를 사랑했던 나르키소스에서 파생된 단어 나르시시즘(자기애). 이야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루는 김영하의 역량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단편이었다. 

"본래 형 같은 자아도취형 인간들은 섹스를 못하는 법이래요. 피곤한 스타일이죠. 그들은 섹스에 몰입하지 않고 사정하는 순간까지도 이,미,지, 를 고민하죠. 그러면서 쉬지 않고 물어보죠. 좋아? 그러면서 자신은 배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거죠. 차라리 자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인간들이 창녀에게 가면 갑자기 휴머니스트가 되죠. 몇살이냐, 힘들지 않느냐, 고향이 어디냐......" -「거울에 대한 명상」속 한 구절
(이해할 듯 하면서도 정말 그럴까, 싶은 말이다. 답변해 줄 만한 그에게 물어보아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