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위대한 작가들

김영하에게 소설쓰기란?

카잔 2013. 11. 3. 12:35

2013. 4月 

 

“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괴물이 한두 마리쯤은 숨어 있다고 늘 생각한다. 수효가 문제일 뿐,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깊고 깊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좁고 더러운 감방 안에 추악한 괴물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산문집 <포스트잍> 작가의 말

 

작가 김영하의 말입니다. 인간의 양면성 중에서 어두운 면을 이해하도록 돕는 통찰입니다. 그가 ‘괴물’이라 명명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야만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인간의 양면성을 ‘이기적인 본성’과 ‘선한 의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인간의 양면성 이해를 돕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이 대표적입니다. 소설에는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와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하이드가 등장합니다. 작품은 극적인 반전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 줍니다. 누구나 지금보다 아름다워질 가능성과 추해질 가능성 모두를 지녔습니다.

 

김영하는 우리 안에 있는 지킬 박사보다 하이드에 관심이 많은 작가입니다. 그는 ‘교양인’을 불러내는 일보다 ‘괴물’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글의 제목에서 ‘김영하에게 소설쓰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지요. 결론부터 쓰겠습니다. 김영하에게 소설쓰기란 자기 안의 괴물을 데리고 와서 세상에 내어놓은 일입니다.

 

“나는 괴물을 데리러 그 어둑한 통로를 더듬더듬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레 내려가는 것이다. 이봐, 잘 있었나? 복도의 끝에 이르면 육중한 철문이 막아선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괴물이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선다. 우리는 뚜벅뚜벅 지상으로 향한다. 마침내 땅위로 올라오면 그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소설이라 부른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소설을 쓰는 과정은 그렇다. 내 사랑하는 괴물들. 그들이 바로 내 소설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내면의 괴물들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불편하거나 불쾌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 까닭입니다. 나는 그런 반응을 들을 때마다 김영하의 역량에 찬탄합니다. 제가 보기에 ‘불편’과 ‘불쾌’는 긍정적 반응이거든요. 괴물을 제대로 묘사했을 때에는 ‘불편한 진실’이 되곤 하니까요. (‘이상’하거나 ‘엉터리’라는 반응에는 팬으로서 속상하겠지요.)

 

김영하 소설을 읽는 키워드 하나는 ‘괴물’입니다. 그의 소설은 누구나의 내면에 살고 있는 괴물을 끄집어내어 보여줍니다. 이를 테면, 그의 등단작품인 ‘거울에 대한 명상’은 나르시시즘이라는 괴물을 다룹니다. 나는 2012년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요상한 기대성과(?)를 품고 읽었습니다. ‘그도 작가 생활을 하며 더욱 성장했을 테니 데뷔작은 신인의 어설픈 구석이 있겠지.’

 

나도 열심히 쓰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하는 어떤 희망을 그의 데뷔작에서 찾아보고 싶은 속셈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나의 기대성과는 빗나갔습니다. 박살났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겁니다. 단편의 어느 대목도 어설프지 않았습니다. 그저 감탄할 뿐이었고 이러니 당선되었구나, 하고 수긍할 뿐이었죠. 김영하는 그냥 신인이 아니라, 초대형 신인이었습니다.

 

김영하는 1995년 계간지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이라는 단편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거울에 대한 명상’은 단편집 <호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3년 10월까지 그가 쓴 소설은 단행본으로 11권입니다. 단편집 4권과 장편소설 7권. 목록을 한 번 정리해 볼까요?

 

1996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7 「호출」

1999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001 『아랑은 왜』

2003 『검은꽃』

2006 『빛의 제국』

2007 「오빠가 돌아왔다」

2007 『퀴즈쇼』

2010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2012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13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의 소설은 이미 전세계로 번역되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은 무엇 때문에 김영하 소설을 읽을까요? 제가 김영하 소설의 힘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김영하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제언을 드려 봅니다. ‘괴물’이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그의 초기 단편들이 수록된 <호출>부터 읽어 보시라고. 하나의 키워드로 ‘김영하 월드’의 문을 모두 열 수는 없겠지만, 몇 개의 방은 열릴 겁니다. 즐거울 거예요.

 

- 롯데월드보다 재밌는 김영하 월드에서,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