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위대한 작가들

카프카다운 이야기 두 편

카잔 2015. 4. 20. 19:13

20세기를 빛낸 작가 목록은 길 테지만, 20세기다운 작가라고 제한하면 목록은 짧아진다. 토마스 만이나 존 스타인벡처럼 리얼리즘이 빛나는 소설은 19세기에도 존재했으니까. 반면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며 쓴 소설이나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처럼 시대의 불안을 복합적인 알레고리로 포착한 시는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작품이었다.

 

카프카는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20세기를 빛냈으면서도 20세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가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카프카가 1904년 문학 친구 오스카 폴라크(Oskar Pollak)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학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문학적 이상을 실현했다. 무턱대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처음 읽은 카프카 소설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변신 시골의사(전영애 옮김)이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2부의 짧은 글들이 이 책의 중심이라고 썼다. 집필 시기를 따지기보다는 카프카다운 글들을 엮었단다. 처음엔 불필요한 의도라 여겼다. 한 작가를 읽을 때, 집필한 순서대로 읽고 싶은 욕망 탓이다. 2부의 짧은 글을 두 편 읽고서 나는 전율했다. 카프카다운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체험했다.

 

독일의 저명한 두덴(Duden) 사전에는 카프카적(kafkaesk)이라는 단어가 실려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포감과 위협을 주는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뜻이다. 카프카는 삶의 진실 한 단면을 보여줄 때에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실 한 조각을 잡아채어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민음사판 변신 시골의사2부에 가장 먼저 나온 두 편의 초단편 이야기가 그랬다. 먼저 첫 번째 글의 전문.

 

<작은 우화>

 

!”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에는 하도 넓어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좌우로 멀리 벽이 보여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양쪽에서 좁혀드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구석에는 덫이 있어, 내가 그리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 - “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 그래, 이것이 카프카다! “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라는 말로 끝났더라면 기발하긴 하나, 감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긍정의 메시지는 희망적이지만, 삶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다수의 사람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시간의 가치와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때는 대개 인생의 만년이다. 머지않아 운명이 우리를 삼켜버릴 즈음 말이다.  

 

<나무들>

 

 

우리가 눈 속에 선 나뭇등걸과도 같으니까. 겉보기에 그것들은 살짝 늘어서 있어 조금만 밀치면 밀어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나무들은 땅바닥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보아라, 땅바닥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도 다만 겉보기에 그럴 뿐이다.


글은 끝났다. 이 글 역시 카프카다움을 잘 보여준다. 피상적인 단정을 지양하고, 일반적 사고에서 한 두 걸음 더 나아가며, 인생의 단면들도 복합적임을 보여주는, 카프카다운 이야기! 우리가 나무 밑동과도 같은 존재라면 강인한 삶을 살겠지만, 우리는 작은 파동에도 흔들리고 마는 작은 배처럼 삶의 부침마다 요동한다. 그러니 카프카는 말한다. 겉보기에만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을 뿐이라고. 처음에는 눈 덮인 나뭇등걸에 빗대어 주루룩 밀려날 것 같은 존재로 묘사했지만, 그렇지 않고 땅에 단단히 붙어 있다고 반전을 주더니, 최종 반전을 한 번 더!! 과연, 카프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