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위대한 작가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법

카잔 2013. 11. 2. 22:08

 

아포리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떠올린 주요 키워드 중 하나.

 

김영하가 책 제목을 정하기 위한 후보작 중 '아포리즘을 사랑한 철학자'가 있음을 알고,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게 어디 있겠나. 그저 잘 즐기면 그만인 것을.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으리라.

'김영하의 세계에서 잘 놀고 있구나'

 

나의 소설론은 이렇다.

 

1) 소설가는 파티 주최자가 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장치로 재미를 극대화하여 독자를 파티에 초대한다.

독자는 제멋대로 춤 출 수도 있지만 파티 주최자가 마련한 여러가지 술과 음식,

프로그램들을 발견하여 즐길 때 더욱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훌륭한 주최자와 눈 밝은 독자의 만남!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으며 꿈꾸는 것이다.

 

재미를 극대화하는 장치는 소설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서사로, 어떤 이는 묘사로, 어떤 이는 캐릭터로...

또 어떤 위대한 이는 이 모든 것을 원대한 주제의식으로!

 

김영하는 아포리즘이라는 장치를 하나 추가했다.

나는 그가 써 놓은 경구 몇 가지를 깊이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영하의 장치 하나를 제대로 즐긴 셈.

 

'아포리즘'이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파티를 위해 마련한 장치라면,

독자들은 그것을 발견하여 즐기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아포리즘이 무엇인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경구다.

그것은 라면 먹듯이 후루룩 빨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황청심환을 먹듯 천천히 씹어서 삼켜야 한다.

귀찮거나 조금 쓰더라도.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김영하가 네번째 장편『빛의 제국』을 두고 한 말이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에 더욱 잘 적용해야 할 말이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 책의 단점은 너무 잘 읽힌다는 것이다.

아포리즘들이 스토리로 연결되어 그렇다.

결국 파티를 제대로 즐기고서 집으로 돌아가며 복기하는 수 밖에 없다.

천천히 다시 읽기를 하고 싶어지는 까닭.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법은

서사를 쫓아 즐거움을 느끼며 단번에 읽고

곱씹을 만한 경구를 만날 때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소설론의 나머지 명제도 정리해 둔다.

 

2) 소설가는 의식 있는 드라이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능숙하게 독자를 데리고 가야 한다.

독자가 다양한 장치로 즐거워하도록 내버려두는 동시에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제의식으로 인도해야 한다.

 

앞서 파티 비유로 돌아가 설명하자면,

소설가는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 상자를 안긴다.

상자 안에는 소설가의 집필 의도가 담겼다.

 

현대 작가들은 상자 안에 분명한 자기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

그들은 '메시지의 잉여'가 아닌 '해석의 잉여'를 추구하니까.

(나는 이러한 경향을 항상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선물 상자라면 '반성'을 담아야 한다. 

세상, 자아, 현실, 이상에 대한 눈을 뜨게 하고 직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학이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성'은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삶을 돕는 예술이어야 한다.

 

(물론 유미주의자들은 문학을 기능으로 전락시킨 이 견해를 싫어할 테지만.)

 

그러니 파티는

쾌락을 만끽하는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즐거움을 통해 에너지를 채운 후, 자기 삶의 반성으로 귀결되는 삶의 축제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