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내가 10대에 읽은 책들, 고작 이거?!

카잔 2012. 7. 7. 19:41


나는 책을 많이 읽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유아기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그림책을 즐겨 보았던 것도 아닐 겁니다. 부모님은 생계를 꾸려가느라 책을 읽어주실 여력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저희 집에서 그림책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스스로 글자를 읽을 무렵에야 집 안에 책을 들인 듯 합니다. 


부모님이 책읽기를 즐기시는지, 아닌지는 대략 가늠할 수 있습니다. 책장에 단행본이 많은지, 전집류가 많은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전집만 있다면 그건 장식용이거나 교육용이겠지요. 책을 안 읽는 부모님일지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전집을 들여놓곤 하시니까요. 저희 집도 그랬습니다. 단행본은 거의 없었지만, 서너 질의 아동 전집이 있었습니다. 


계몽사 어린이 한국의 동화, 출판사 이름이 가물가물한 스무 권 짜리 과학책 전집, 70권짜리 웅진 과학앨범 등이 엄마가 사 주신 전집입니다. 내가 그 책들을 야금야금 읽어간 것은 초등학교 때입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집에 책이 더 있었더라면, 내가 그 책들까지 읽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결과론적 해석입니다. 읽고자 했더라면, 도서관에 가거나 친구들에게 빌려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허나, 제가 살던 동네는 빈촌이라 도서관이 없었고 친구들 중에도 책이 많은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 중 한 친구가 셜록 홈즈 전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죄다 빌려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서에 몰두했다고 보기는 힘드네요. 


빌려 읽은 적이 그것 뿐이었고, 이후로도 나는 책보다는 운동과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이것이 초등학교의 때의 내가 책을 읽었던 전부인 듯 합니다. 기억나는 것 모두를 적었지만,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도 여럿 있겠지요. 많지는 않을 겁니다. 제 기억 속엔 온통 축구를 했던 기억,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 놀러 다녔던 기억만이 가득하니까요.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책을 읽은 기억이 더욱 빈약해집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10권도 읽지 않았을 듯 합니다. 10권이라는 숫자는, 읽은 책 몇 권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5년 동안 10권은 읽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쓴 것입니다. 하다못해, 학교 숙제로라도 말이지요.


10대 시절의 독서를 떠올릴 때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집에 놀라갔었는데, 그의 형이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있더군요. 나는 형이 아주 공부를 잘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책 덕분인지, 아니면 공부를 잘 한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형도, 책을 들고 있는 모습도 참 좋았습니다. 


아! 외삼촌 댁에 살면서 책 몇 권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보세요! 처음엔 기억하지 못했지만 저도 읽은 책이 있잖아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흥분하고 있네요.) 외삼촌 댁의 책장에는 단행본 몇 권이 있었습니다. 10권 내외에 불과했고 책의 종류도 종횡무진이라, 집안에 책을 읽는 사람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누렇게 빛바랜 페이지와 케케한 책냄새가 아련히 떠오릅니다. 인문고전 축에 드는 그 책을, 나는 오로지 성적 흥분을 위한 목적으로 읽었던 듯 합니다. 아마도 책을 읽고서 야한 상상을 한 것도 여러 번이었겠지요. 처음부터 끝까지는 읽지는 않았고, 야릇한 대목만을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이 [꺼리]라고 기억하는 책을 1권부터 3권까지 읽기도 했습니다. 잡동사니 옛날 이야기를 묶은 책이었지요. 전여옥 선생의 [일본은 없다]를 몇 페이지 넘겼지만 재미없어서 내려놓은 기억도 납니다. 이 책들을 읽은 것이 20대 초반인가 하고 헷갈리기도 했지만, 여러 정황을 감안해 보니 고등학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고, 절망입니다! 기억하지 못한 책이 더러 있다고 해도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이 이것 뿐이라니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나의 십대는 다른 것에 몰입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합리화가 아니라 정말 괜찮습니다. 내가 전교 1~2등을 달리던 것도 있었거든요. 중학교 시절엔 농구, 고등학교 시절엔 당구가 그랬습니다. 


최근 한 논문에 의하면, 10대 때의 체력이 평생을 간다는데 그것 역시 지금의 나를 흐뭇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농구, 축구, 당구를 워낙 많이 하다보니 체력이 좋아지긴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 시절을 책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종종 유명 독서가들이 십대에 읽었다는 책을 서른이 넘어서 읽는 경우엔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삶의 교훈을 떠올립니다. 인생에는, 스무 살엔 대학에 가야 하고 서른 살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절대적인 시간표가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간표가 있을 뿐이니, 깨닫을 때에 실행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것을. 이렇게 나를 다독여도 아쉽긴 합니다만, 현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작은 결론 하나를 내리자면, 나의 책읽기는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스무살이 되던 그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20년 동안 읽었던 책보다 많은 양이니까요. 스무살을 터닝포인트로 하여 내 삶은 반전과 도약을 일궈냈지요. 책 덕분일까요? 당시의 상황과 연령이 주는 생애발달적인 특징의 덕도 봤을 겁니다. 


하지만 책을 통한 깨달음과 성장도 무시하지 못할 도약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가 주었던 지적인 재미와 데카메론이 주었던 자극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받았으니까요. 스무살부터는 할 얘기가 많아집니다. 읽은 책도 많고, 내가 변화된 이야기도 많으니까요. 그때부터 책을 사서 읽었기에 지금도 그 책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10대의 나는 운동하며 뛰어노는 일에,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에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20대가 되어서는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독서와 신앙생활에 던졌습니다. 나의 삶은 내가 시간을 보낸 대상과 양에 따라 형성되어 갔습니다. 결국, 삶은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주었는가,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달라지나 봅니다. 


10대의 내 독서생활을 돌아보고 나니, 내게 질문 몇 개가 남는군요. 

지금의 나는 무엇에 시간을 주고 있나? 주로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나? 

나는 1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때와 똑같은 책만 읽을 것인가?

아니면 보다 많은 책을 더 열심히 읽을 것인가?


나는 20년 전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그때처럼 똑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고 싶습니다. 하지만 책은 좀 더 많이 읽어두고 싶습니다. 1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겠냐는 질문을 20년 후의 나에게 던져 봅니다. 그러고 나니, 삼십 대에 읽어두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만한 책들이 몇 권 떠오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니체의 책 한 권을 꼭 독파해야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