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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통합적 사유의 힘

카잔 2012. 5. 25. 12:15

 

* 삼성이 만든 대학생 웹진 <인재제일>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인문학의 중요성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선 통합적 사고의 힘을 다룬 글입니다.

 

 

 

Q1) 인문학과 창의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창의성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피카소가 떠오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거나 혹은 심미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야 창의성이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피에르 퀴리 부인도 떠오른다. 끈질긴 연구를 통해, 이미 존재했지만 아무도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정도가 되어야 창의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나는 창의성과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창의성의 사전적 정의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다. 다시 생각한다. ‘누구나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냐?’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다면, 왜 나는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누구나 창의성을 갖고 있다. ‘어떻게’에 답하는 도구적 이성과 ‘왜’에 답하는 비판적 이성을 발휘하면 된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문 정신이다."

 

오랫동안 창의성을 연구한 앤드류 라제기의 저서 『리들 The Riddle』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창의성은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썼다. “직면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든 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면 당신은 고안적 창의성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도 좋다!” 그는 고안적 창의성이란 개념으로 피카소의 예술적 창의성, 퀴리 부인의 과학적 창의성과 구분했다. 실용적 창의성, 일상적 창의성이라고도 부를만한 고안적 창의성을 훈련하는 방법은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머리를 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왜 이것일까? 저것이면 안 될까? 이런 질문을 하며 사색에 잠겨보자는 말이다. ‘어떻게’에 답하는 도구적 이성과 ‘왜’에 답하는 비판적 이성을 발휘하면 된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문 정신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강신주 선생은 좀 더 친절하게 풀어 설명했다. 당당하고 정직하게 문제에 직면하려는 정신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두고 인문정신이라고. 나는 인문정신과 인문학 공부가 창의성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철학과 역사 그리고 위대한 문학 작품에는 훌륭한 질문을 던지며 비판적 사유를 시도한 사람들이 이야기가 널려 있으니까.

 

Q2) 인문학의 중요성과 인문학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멋진 논리는 '뜻밖'의 주장에서 탄생한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나왔다. 냉장고 안에 차가운 공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의 결함이 없지만, 이를 두고 논리적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논리가 아무리 멋져도 뻔한 주장과 근거는 논리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뜻밖의 주장인데도 명쾌한 논리가 뒤따라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논리적이라고 한다. 이성은 멋진 논리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탁월한 논리는 뜻밖의 것을 발견해내는 관찰력에서 탄생하여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사고력으로 완성된다.

 

"문학, 철학, 역사를 읽는다고 해서 당장의 실용적인 도움을 얻지는 못하지만 인문학적 감수성이 키워진다. 이것은 탁월한 논리를 펼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이다."

 

인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해지면 관찰력이 향상된다. 인문학적 감수성이란, 늘 있어왔던 사물이나 현상도 당연하게 보지 않는 힘, 세상이나 사람들의 섬세한 변화에도 감응하는 힘, 상황을 새롭게 통찰하는 힘이다. 문학, 철학, 역사를 읽는다고 해서 당장의 실용적인 도움을 얻지는 못하지만 인문학적 감수성이 키워진다. 탁월한 논리의 탄생 조건을 갖추는 셈이다. 이처럼 인문학 공부는 다른 모든 역량과 가치를 펼칠 수 있는 기반과 기초 역량을 갖게 한다.

 

Q3) 중세까지만 해도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저 학자일 뿐 학문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세시대 이후에는 학문의 경계를 짓고 한 학문에서는 한 학문만을 추구하는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현상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단절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세기를 걸쳐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문제다. C. P. 스노우는 1959년에 5월 7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전통적인 연례 리드 강연에서 이 문제를 다뤘고, 그의 강연은 『두 문화』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후 60년이 지났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 생긴 단절의 틈은 메워지고 있는가? 90년대 말에 대학을 다닌 나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손가락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문분과들 사이에 높은 울타리를 쌓는 것으로 말하면 한국 대학들이 단연 최고 수준입니다.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전공의 ‘순수성’과 ‘정통성’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인접 학문끼리도 별 소통이 없습니다. 옆집은 뭐 하나 구경도 하고 기웃거려 보는 것은 학문의 시야를 넓히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기웃거리다간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스노우, 최재천 교수 그리고 이 글이 말하려는 요지는 두 문화가 다시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경계는 실재가 아닌 편의상의 구분이니까. 도정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따윈 거들떠보지 않죠. 학문의 경계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거니까요. 진리는 학문의 국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창틈으로 새어들어 오는 가는 빛줄기만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일 학문으로는 삶의 문제를 제대로 조망할 수도, 해결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모든 학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학문 간의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태도가 왜 문제인가? 단일 학문으로는 삶의 문제를 제대로 조망할 수도, 해결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모든 학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보더라도 경영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 문학,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시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사고의 얼개를 짜고 가치관을 발견해야 한다(철학). 살면서 점점 더 자신을 알아가야 하고(심리학),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해야 한다(사회학). 여가와 문화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얻거나 삶을 비평할 기회를 갖는다(문학예술). 우리의 삶은 곧 개인사가 되고(역사), 멋진 역사를 위해 스스로를 경영해야 한다(경영).

 

멋진 인생을 살려면 수많은 학위를 지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학문의 가치를 열등하게 여기는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인생을 위해서는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단일 학문은 하나의 시각으로 우리 삶을 분석하곤 한다. 『88만원 세대』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훌륭하게 지적하여 연대와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보여 주었지만, 정작 20대들은 움직일 심리적인 에너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에너지가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위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젊은이들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전해 주었다. 하지만 사회 구조로 인한 문제들과 실천적 지침은 전하지 못했다. 두 권의 책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니 모두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우리 삶은 경제학만도 아니고, 심리학만도 아니다. 문학만도 아니고 경영만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삶이 되는 것이다. 자기 학문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다른 학문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 진짜 삶과 멀어지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칸트와 흄이라는 철학자들에게 천착하지 않았더라면 “상대성 이론의 해법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 때부터 이론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기보다는 실험 물리학과 철학 공부에 열심이었던 학생이었다. 1944년의 한 강연에서는 철학적 통찰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결과였다. 나무와 숲을 모두 보려는 노력이 탁월한 사상을 펼쳐낸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학문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려는 노력 그리고 각 학문의 가치를 이해하고 통합하려는 노력. 한 사람이 두 가지의 노력을 모두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시대가 어느 하나의 노력에만 치우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볼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