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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tory/나름대로 예술만끽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 영화 <콰르텟> 감상기 

 

 

1.

<콰르텟>은 상실을 다룬 영화다. 피해자는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고, 피의자는 쏜살같이 빠른 세월이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은 젊음이다. 세월은 저만치 흘러갔고, 영화 속 주인공인 4명의 은퇴한 뮤지션들은 이만치 늙어갔다. 씨씨(폴린 콜린스)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최정상급의 소프라노였던 진(매기 스미스)도 은퇴하여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세월은 한 세대를 풍미한 음악가라도 해도 비켜가지 않았다.

 

2.

“재능이 사라졌어.” “그런 게 인생이야.”

 

이야기는 은퇴한 음악가들이 모여 사는 비첨하우스에서 진행된다. 진은 비첨하우스로 입주하고서 전 남편 레지를 만났다. “왜 음악을 관두게 됐어?” 레지가 물었다. 진은 비평가들이 두려워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예전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레지는 자신이 메모해 둔 쪽지를 보여주었다. ‘창작은 비평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외롭고 영원한 길.’ 또 다른 장면. 진은 세월이 흘러 예전같이 노래를 부를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젊은 날의 재능이 사라졌어.” 레지가 대답했다. “그런 것이 인생이야.” 젊은 날들의 체력, 열정, 재능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이 인생이다.  

 

3.

나는 글의 서두에서 <콰르텟>을 노년의 영화라고 쓰지 않고, 상실의 영화라고 썼다. 노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젊음을 잃어가며 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1년 전의 젊음을 상실하며 산다. 모든 사람들이 젊음과 이별하며 산다는 점에서 <콰르텟>은 노인들만의 인생이 아니라, 누구나의 인생을 담은 영화다.

 

사람은 스물다섯까지는 성장하고 이후로는 노화가 진행된다. 그러니 스물다섯 이상을 먹은 사람들이라면, ‘이건 우리 할머니 영화네’라고 치부해 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의 의미와 젊음의 소중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콰르텟>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나이든다는 것의 의미를 음미할 것이다.

 

나이 들어감에 집중하여 예민해지자는 말은 아니다. 나이 듦은 예민해질 일도, 외면할 일도 아니다. 예민해질 수도 있지만, 담담해질 수도 있다. 외면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을 밀쳐두는 행위다. 나는 항상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자기 인생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YES'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천하며 살려고 한다. 받아들이고 음미하다 보면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4.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그것이 젊음이었음을 깨닫는다. 야속한 젊음이다. 영화는 젊음의 상실이 처음엔 당황스럽더라도 나이 든 자신의 인생과 점점 화해해가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고마운 영화다. 영화를 통해 자기 삶을 성찰할 기회를 마련하기만 한다면.

 

5.

인생이란 크고 작은 상실이 가득한 여정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물건들을 잃어버렸다. 작은 상실들이었다. 한때는 뜨겁고 소중했던 관계도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폭과 깊이가 변화되기도 했다. 관계의 틀어짐은 큰 상실이었다.

 

언젠가는 아직 은혜를 갚지 못한, 아니 영원히 못 다 갚을 부모님과도 그리고 한평생 정을 쌓아온 배우자와도 헤어져야 한다. 이것은 가슴이 미어지는 상실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상실들을 만나야만 하는 여정, 그것이 인생이다.

 

피식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또 하나의 상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요즘 탈모 관리를 받고 있다. 친구들보다 탈모가 빨리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문득 슬프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자신의 머리칼과 이별한다. 내가 그렇다는 사실이 유감이다. 어제는 유감을 넘어 조금 우울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주인공 레지의 헤어를 부러워했다. 그는 백발이지만 머리칼이 풍성했다.

 

6.

“내게는 노래와 인생 둘 다 중요해.”

 

한평생을 살아온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건진 인생의 지혜도 많았다. 레지는 젊은 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진에게 말했다. “내게는 노래와 인생 둘 다 중요해. 당신에게는 노래만 중요했지.” 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진은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다 잃었어. 보석 몇 개와 시원찮은 고관절 밖에 없어. 여기에 온 것도 봉사단체의 후원을 받아서야.”

 

노래뿐만 아니라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가 붙잡고 있는 줄기다. 주인공들에게 노래는 직업이었다. 인생은 우정, 산책, 건강, 즐거움 등 직업 이외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 등장한 두 노인네 듀엣은 “돈이 많으면 무엇하리, 오늘 웃었는지,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를 노래했다.

 

7.

탈모관리를 위해 돈을 지불한 나는 값비싼 대가도 기꺼이 치르며 젊음을 유지하려는 풍조에 올라탄 것일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러면서도 내게서 영화 속 진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나는 탈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다.

 

당황스럽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밀쳐내지는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자신도 있다. 조만간 한 달에 5~6회 정도 탈모관리를 받고 있는 현실과도 화해할 것이다. 결국 나는 자유로이 살고 싶으니까.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우리 자유의 경계다.”

 

진은 자신이 노인이 되었음을 받아들였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내 차례다.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좋은 대로 해석하는 일을 멈추고,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이 내게 힘을 준다.

 

“신기한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