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나름대로 예술만끽

김연아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들

카잔 2014. 2. 21. 11:56

 

 

오늘 새벽, 현역으로서의 마지막이 될 김연아의 경기를 보았다. 아니 예술활동을 보았다. 다른 피겨 선수들은 스포츠를 했고, 김연아를 예술을 했다. 이것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한 줄의 소감이다. 그녀는 4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에 낄 예술 작품을 창조해내는, 스포츠 예술가다. 마이클 조던의 더블클러치, 리오넬 메시의 환상 드리블에 버금간다.

 

그녀의 경기를 앞두고서 내 안엔 얼마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금메달을 땄던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생방송으로 챙겨보지 못한 것! 반 바퀴를 채 못 남겨둔 상황에서 막판 추월에 성공한 심석희의 근성을 리플레이로 거듭 보았지만, 생방송으로 보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살다가 감격의 눈물을 맛본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하고 경이로운 일인가. 생방송을 놓친 나의 부주의가 미웠다. 

 

경기를 마친 후에 서로의 기록을 비교함으로 우열을 가리는 피겨 스케이팅이나 1만 미터 스피드 스케이팅과는 달리, 쇼트트랙은 상대와의 경쟁을 통해 순위를 가늠한다. 게다가 아슬아슬한 추격과 추월이 난무하기에 긴장감은 극도에 달한다. 쇼트트랙의 매력이다. 김연아 경기를 기다리면서 느낀 아쉬움은, 이런 긴장감 넘치는 매력이 피겨엔 없을 거라는 나의 추측에서 기인했다. 

 

 

추측은 절반만 맞았다. 쇼트트랙과 같은 긴장감은 없었지만, 피겨엔 피겨만의 고유한 긴장감이 존재했다. 쇼트트랙엔 상대랑 엉켜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상대가 우리를 추월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있다면, 피겨엔 트리플 악셀을 잘 해낼까 하는 긴장감이 있다. 이것은 쇼트와 비슷한 긴장감이다. 피겨만의 고유한 긴장감은 선수가 표현하려는 것을 얼마나 잘 표현해 낼까에 있다.

 

표현한다는 것은 예술에 가까운 요소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기를 보는 처음엔 넘어질까봐 염려되나, 자꾸 보다보면 회전할 때의 팔 동작이나 다리의 모음새, 날을 지칠 때의 표정까지 살피게 된다. 피겨엔 쇼트트랙보다 훨씬 섬세한 곳곳에 긴장감이 존재한다. 더우기 거장 김연아의 몸짓이니 더욱 주목하게 되고, 다른 선수와 비교하게 되고, 감탄에 이르고 만다.

 

김연아의 경기가 마지막이었음을 알았지만 나는 20여분 전에 인터넷 생방송 창을 열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아야 김연아의 탁월함을 더욱 구분할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두번짼가, 세번째로 본 경기가 미국 선수 '그레이스 골드'의 연기였다. 회전이 매우 스피드했고 전반적으로 역동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연기였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잘하는데, 김연아는 과연 다를까? 그리고 다르다고 해도 그 다름은 미세한 것일진데, 피겨 문외한인 내가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며 다른 선수의 경기를 보는 사이, 드디어 김연아가 등장했다. 경기 시작 전에 얼음을 지치는 김연아를 보며 팔동작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어? 김연아가 저런 팔동작으로 스케이팅을 달렸나?' 하는 의문스러운 생각이 왠지 불길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기우였음을 느꼈다. 김연아로 인해 스포츠는 예술로 바뀌었다. 김연아는 예술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에 몰입했다. 일급의 예술가만의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 갖는 강점과 타고나지 못한 강점을 결합해낸다. 그리하여 타고난 성향에 기인한 단점이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을 실천해내는) 노력의 조화 없이는 불가능한 경지다.

 

역동성은 우아함과 어우러지기 힘들다. 김연아는 모순되는 두 개의 가치를 자신의 예술작품 안에 빚어낸다. 역동적인데 우아하다니!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그런 경지가 예술에는 존재한다. 인생에 예술 관람이 필요한 까닭이다. 삶을 아름답게 혹은 창의적으로 살고 싶다는 충동을 예술이 부추기니까. 그런 경지는 스포츠에서도 존재한다. 그것도 난해한 예술작품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김연아가 보여 준 것은, 스포츠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이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스포츠도 우리를 탁월함으로 향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감탄스러운 과정에 오점이 생겨 아쉽다. 이전까지의 1위 선수가 워낙 점수가 높아 조마조마했지만, 김연아가 금메달을 거머쥐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은메달을 주었다. 세계 언론은 국내보다 더욱 분노했다는 기사가 조금은 위로한다.

 

나를 더욱 위로하는 것은 인생의 진실들이다. 세상사는 공평함이 아닌 이해관계로 돌아간다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이 법을 믿는 것은 공정해서가 아니라 법이기 때문이다. 법은 때때로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니 그 이상으로 가끔 공평함을 싫어하고 공정치 못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몽테뉴의 말이다. 스포츠 판정에도 종종 공정치 못한 이들이 참여하나 보다.

 

 

정작 본인은 어떠할까. 속상하고 아쉬웠으려나? 이런 궁금증과는 별개로 그녀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도 일급 예술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최상의 예술가는 과정을 즐기고 세상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극기를 추구한다. 세상이 칭찬해도 극기하지 못할 때 괴로워하고, 자신을 넘어설 때 만족해한다. 김연아는 그러한 일급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인터뷰는 감격스러웠고 판정을 잊게 했다.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또 감사드린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큰 실수 없이 준비한대로 다 보여 드려 만족하고 행복하다. 끝났다는 생각만 든다. 너무 힘들어서 빨리 지치고 힘들었는데,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해서 기쁘다. 준비하면서 체력적, 심리적 한계를 느꼈는데 이겨내고 했다. 내 경기력에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