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감독 장 마크 발레)을 보았다. 에이즈 감염으로 30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를 받은 한 남자의 실화다. 감동과 성찰을 안기는 실화! 그는 불합리한 이익 집단(미국 식품의약국)에 맞서며 7년을 더 살았다. 그 과정에서 금지된 약물을 판매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에이즈 환자들을 생명을 연장시켰다. 영화의 여운은 진했다.

 

 

1.

주인공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거친 사내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섹스를 즐기고, 로데오 경기에서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식이다. '도무지 나랑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겠군' 영화 초반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론에게 빠져버렸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금지된 법에 도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법과 규정을 도무지 지키지 않는군.'

 

세관을 속이면서 금지된 약물을 자국으로 들여오던 그는, FDA의 신약 허용 절차가 복잡하고 이익에 휘둘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들여온 금지 약물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환자를 위한 행동이기보다는 자신의 돈벌이였다. 처음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점점 함께하는 동업자와 우정을 나누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론에게 매력을 느꼈다.

 

 

 

2.

론은 약자를 섬기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자가 아니다. 먼저 자신의 삶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을 돕고, 자기 사람을 위해 거칠지만 따뜻하게 사랑한다. '거칠지만 따뜻한 사랑'은 이런 거다.

 

론의 동업자 '레이언'은 게이다. 에이즈를 발견한 해는 1981년도이고,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다. 에이즈에 대한 오해가 만연했던 당시, 론은 게이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론이 게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게이를 터부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론과 레이언이 마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론과 알고 지내는 건달 비슷한 남자가 둘을 만났다. 그는 레이언과 악수를 하지 않았다. 론을 남자의 멱살을 휘어감고 레이언과의 악수를 강제했다. 남자는 불쾌하지만 론의 완력에 밀려 레이언과 악수하게 된다. 레이언은 이때 론의 거친 우정에 감동한다. (레이언이 죽기 직전 론을 위해 베푼 우정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돕는 론의 모습 중 가장 감동했던 것은 전염을 우려해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염된 이후 한 번 섹스하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섹스의 상대 역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온 에이즈 감염자다. 론은 그 여자가 에이즈 환자라고 예감하면서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묻는다. (직원은 달랑 하나다. 동업자도 레이언 한 명.) "저 여자 에이즈 환자인가?" "딱 봐도 에이즈 환자인 걸요." 잠시 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는 여자의 쾌락적인 신음소리가 울린다. 둘은 그렇게 안전하게(?) 즐겼다.     

 

3.

론은 성자의 길이 아닌 인간다운 길을 걸었다. 성자는 타인을 먼저 섬기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그러기가 무지 힘들다. 론은 먼저 자신을 구했고, 자신과 비슷한 곤경에 빠진 타인을 돌아보았다. 이것이 인간적인 길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을 생각했다.

 

자신의 자녀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자녀를 구하기 위해 온갖 자료를 읽어 약을 손수 지었던 다산이었다. 그러고서 천연두에 걸린 자녀를 둔 부모님을 심정을 헤아려 제조법을 널리 알렸던 다산! 이것이 인간다운 길이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유대감을 발휘하여 돕는 것. 나는 론이 성자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걸어서, 너무나도 인간다워서 감동했다.

 

 

4.

영화는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인간다운 감동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론이 자신의 병에 투쟁하는 모습도 나오지만, 영화는 이익집단으로서의 FDA 가 지닌 어두운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다. 영화를 진행하는 소재가 에이즈 치료제라면, 주요한 갈등은 치료제를 둘러싼 환자, 의사, 제약사, FDA의 이해관계다. 제약사의 돈에 휘둘리는 FDA, 규정이 먼저냐 환자가 먼저냐를 두고 의견이 나뉘는 의사들, 금지 약물이라도 효과만 있다면 마다않는 환자들, 환자보다는 수익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제약사.

 

민간한 소재이니 만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췌장말 4기로 항암 투병을 하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녀석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함께 보고 싶다. 친구로서 이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모든 것을 알거나 컨트롤하는 것도 아니고 때론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론이 아니다. 환자들의 마음을 모른다. 친구의 고통이 나의 몸으로 들어올 순 없다. 그저 그의 마음을 아주 조금 헤아려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의사를 신뢰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요소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 정말 함께 보게될지는 미지수다.

 

 

 

5.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 훌륭했다. 기침도, 주먹질도, 에이즈를 조사하기 위해 책을 넘기는 손깃에도 론의 영혼이 스며든 것 같았다. 아카데미는 '남우주연상'으로 그의 노고에 화답했다. (레이언 역을 맡은 자네드 레토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나는 개연성 있는 전개를 좋아한다. 개연적인 디테일이 모이고 쌓여 영화 전반부와 전혀 다른 후반부를 보여주는 영화를 사랑한다. 도입과 결말이 엄청나게 다르지만 개연성 높은 전개로 인해 비약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들을.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영화가 그렇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내게 무엇이었나. 인간적인 선행의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했고, 거친 사람들의 따뜻함을 보아 감동했던 영화다. 세상은 온통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생각했다. 자기중심성은 세상이 운행되는 원리다. 그러니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이기적인 본성으로부터 자주 벗어나려는 선한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느 때 같으면 '내게 30일만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품었겠지만, 내 소중한 친구가 떠올라 가슴 아팠던 영화였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