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벚꽃처럼 살다가신 선생님

카잔 2013. 4. 22. 12:00

 

밤 11시가 넘은 시각, 나는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구본형 선생님의 발인미사와 화장식 그리고 유골안치를 마치었던 날(4월 16일)이었고, 저녁에는 살롱9에서의 강연까지 진행했던 날이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즈음이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된 선생님의 조문과 장례식이 끝난 즈음에 강연까지 해야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집앞 거리에서 나는 벚꽃터널을 만났다. 인도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이 만든 짧은 터널이었다. 가로등 불빛 덕분인지, 벚꽃의 내음 덕분인지 터널은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생님이 떠올랐다.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웠고, 떠난 후에 당신의 향기를 남기셨다. 봄날에 가신 것 또한 당신다운 떠남이라고 생각했다. 벚꽃인지, 선생님인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 수고했구나. 이 좋은 삶을 더 함께 하지 못해 아쉽구나. 하지만 꽃처럼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해왔기에 아쉬움이 덜하다. 너도 그리 살거라. 꽃처럼 눈부시고 아름답게 말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단명한 것들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피워내는 꽃의 몰입과 향기를 남기고 떠날 줄 아는 꽃의 마지막을 본받거라."

 

눈물이 흘렀다. 벚꽃나무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아계실 때에 좀 더 자주 선생님 곁에 서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지만, 금새 선생님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찬탄으로 내 마음을 옮겨갈 수 있었다. 눈앞에는 벚꽃이 하늘거렸고, 선생님은 정말로 멋진 삶을 사셨으니까. 젊은 여성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벚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진해질 것 같다. 세월이 오래 지나도 4월만 되면 선생님 생각에 한동안 벚꽃을 쳐다보게 될 테지. 장례식 기간 중에 선생님의 마음을 따라 벚꽃 구경을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는데 장례식이 끝난 날 밤, 벚꽃과 함께 어우러지신 선생님을 만나다니!

 

나는 무심한 제자였다. 선생님이 벚꽃을 좋아하신 줄을 어젯밤에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고서야 알았다. 이 책은 2008년도에 끝까지 읽었던 책이기도 한데 선생님이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었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써 두었다.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산길을 걷다 숲 속에 심심찮게 묻혀 자란,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만나면 늘 그 허리를 쓸어준다. 그 밑에 서서 꽃들 사이로 하늘을 보려 한다. 바람이 불고 이내 꽃비 오듯 그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내가 매년 봄에 벚꽃구경을 즐기는 것도 선생님의 영향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벚꽃을 더욱 좋아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 주의 벚꽃터널에서의 짧은 감격이 진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선생님과의 삶과 이별이 벚꽃을 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벚꽃의 삶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는 게 낫겠다.

 

"벚꽃잎에는 작고 여리며 앙증맞고 환한 귀여움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이유이다. 일주일이면 잎사귀들이 나오고 꽃잎은 분분히 거리에 떨어져 내리고, 이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목련은 아름답지만 지고 난 다음 그 무거운 주검을 주체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이 작은 꽃은 살아 있을 때처럼 갈 때도 가볍기 그지없다."

 

선생님의 삶은 자유와 행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은 슬픔과 함께 축복도 함께 느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아름다운 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나는 매년 '가볍고 환한 가슴의 상처를 입고 봄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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