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와우팀원에게 문상 가는 길

카잔 2013. 7. 16. 11:13

 

 

먼 길을 나섰다. 부산까지 가야하는 여정이다. 열두 시 어간에는 부산의료원에 도착하기 위해 오전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늦잠을 잤다. 어젯밤 글쓰기 수업을 해서인지 7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오늘 일정이 2개지만, 각각 부산과 서울이라 이동거리가 멀다. 저녁엔 종로에서 독서 강연이 있다. 오늘은 화요일, 조르바 원고를 보내는 날이다. 조르바 원고를 쓸 책, 열차에서 사용할 노트북, 그리고 강연을 위한 독서노트로 가방이 두툼해졌다.

 

아침식사를 잘 챙겨먹는 편이지만 오늘은 걸렀다. 간헐적 단식이 좋다는데 오늘 오전에 단식이나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주방 선반에 꺼내두었던 파프리카 샐러드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먹으려면 최소한 5분은 걸릴 텐데 열차 시각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고 검정 넥타이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오랜만에 정장 구두를 꺼내 신으며 생각한다. 3개월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4월 13일에 구본형 선생님이 소천하셨다.)

 

잰걸음으로 잠실역을 향했다. ‘독서강연만 없으면 오늘 내려가서 하룻밤 자고 내일 발인식까지 참석하고 오면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인천, 파주, 오송, 진주에 흩어져 사는 4기 와우팀원들이 모여드는 날이니 함께 고인의 명복도 빌고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에 한나절 머물다가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 아쉽다. 한편으론, 멀리 부산까지 동기를 위로하러 달려가는 그네들의 우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맙기도 하고.

 

지하철 서울역사의 파리바게뜨에 들렀다. 간헐적 단식은 육체적 활동이 없는 다른 날로 미루기로 했다. 요즘엔 빵을 자주 먹지 않는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소로부빵도 가끔씩 칼로리가 필요할 때만 먹는다. 건강을 위해 줄여야 하는 식품 목록에 흰 빵이 포함된 걸 본 후부터 생긴 변화다. 인식이 기호 식품을 바꾸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인식의 힘은 강력하다. 잘못된 인식을 가지며 산다는 것을 위험한 일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빈 손으로 파리바게뜨를 나왔다. 식사 대용으로 적합한 샌드위치도 잠시 거들떠 보다가 말았다. 왠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천원을 결재할 여력은 있지만 오늘은 비싸게 느껴졌다. 한때 즐겨먹던 소보루빵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덴마크 드링킹요구르트나 마시자는 생각을 하며 나왔다. 편의점으로 가서 요구르트와 샤니 건포도머핀을 샀다. 생수도 하나 샀다. 어제, 두피관리사는 말했다. 머리에 열증이 있는데 식히시려면 물을 자주 드세요.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들어서니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깔끔한 간이부스가 보였다. 새로운 브랜드의 간이 음식점들이다. 간판을 읽는데 한참이 걸린 슬런치(SLUNCH)에는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볼 법한 샐러드, 샌드위치 등이 작은 용기에 담겨 있었다. '이걸 사먹을걸' 하는 후회도 잠깐. '바비 머시기머시기'라고 쓰인 한식 도시락집도 있었다. 예전에 없던 것들이다. 세상은 이렇게 쉭쉭 변하는구나, 생각하며 열차를 탔다.

 

KTX 매거진의 타이틀 기사는 “해양레포츠의 도시 부산 즐기기”다. 요트비(yacht B)가 해운대 앞바다를 항해하는 세련된 표지사진의 흰색과 푸른색이 지금은 여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창밖을 내다보니 모처럼만에 갠 하늘이다. 비그친 세상은 깨끗한 맑음을 되찾았지만, 상주인 와우팀원의 마음엔 비가 내릴 것이다. 슬픔과 비통함의 눈물이 그녀의 마음 속을 적시고 있을 것이다. 눈물샘까지 차고 넘친 눈물 몇 줄기는 뺨을 타고 흘러내릴테지.

 

매거진의 겉표지에 쓰인 “이 잡지는 앱마켓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으며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e-book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www.korail.com" 문구가 보인다. 이제는 KTX매거진을 보고 싶을 때 정기구독을 하지 않고도 간편히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세상은 끝임없이 변화한다. 편리하게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게도 변한다. 이제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외롭고 슬픈 삶의 변화다.

 

사람들은 슬프겠지만 힘을 내라고 위로한다. 슬픔을 잘 극복하라는 말도 건넨다. 고마운 말이다. 관심 자체가 얼마간의 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슬플때 힘을 내기란 참 힘든 일이다. 슬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화해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어머니는 21년 전 돌아가셨다. 나는 그 슬픔을 극복한 적이 없다. 그저 익숙해졌을 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섭기도 한 일이다. 어머니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힘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녀에게 당분간 슬퍼하라고 말하고 싶다. 눈물도 흘리며 자주 어머니를 추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괜찮다가도 세수를 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고, 웃으며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워져 목으로 넘긴 밥알을 목덜미가 도로 내뱉는 느낌도 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슬픔을 이겨내려고 하기보다 산다는 것은 하나 둘 놓아가는 과정이고, 상실이야말로 인생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하늘의 구름이 점점 사라진다. 햇빛이 찬란하다. 장례식을 하기에는 애꿎은 날씨다. 16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이제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그녀. 언니와 동생이 있으니 서로 의지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OO아, 슬픔을 체험하면서도 우리가 와우수업을 하며 함께 배웠던 교훈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30분짜리 울음을 20분 만에 거두어서는 안 되며, 고통이야말로 우리를 진지한 사유로 인도하는 최고의 가이드란 걸.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