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유니컨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인문학 수업은 준비하는 과정도 수업 후의 결과도 내게 기쁨이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낭만주의 문학을 강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했을 테지만, 어젯밤엔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야 하는 밤이었다. 하지만 나는 '21시 이후 취식금지'라는 나만의 건강지침도 깨뜨리고 말았다. 스트레스는 자기경영을 이런 식으로도 방해하는구나 싶었다. 사정은 이랬다.
유니컨 수업은 내게 제1의 우선순위였다. 허나 하필이면 유니컨 수업이 있는 날에 변화경영연구소 살롱9의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잡혔다. 나는 토론회를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상반기 프로그램 기획자요 진행자로서 참석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사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토론회 5일 즈음 전에 누군가가 나더러 참석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참석 여부를 두고 갈등했다. 그의 말이 마음 한 구석에 밀쳐 두었던 책임감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10분의 양해를 구해 수업일을 변경했다.
토론회는 자발적인 자리였지만 10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모였다. 이것이 변화경영연구소의 힘이다. 모두들 시간을 내고 기꺼이 연구소의 일에 헌신한다. 나도 그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참석을 했다. 변화경영연구소는 멋진 커뮤니티다.
하지만 어제의 토론회는 좋은 시간이 되지 못했다. 사전에 공지된 회의 안건은 다뤄지지 않았고, 토론 주제는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심도 있는 논의가 있기를 기대하며 참석했지만, 초점 없는 토론에 깊이를 더해가며 대화하기는 힘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상쾌할 수 없는 이유였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토론회에 괜히 참석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나로서는 수업일 변경이라는 꽤나 큰 대가를 치르고 참석한 것인데, 그만큼의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쉬운 것 뿐이다.
변화경영연구소와 와우스토리랩은 모두 내게 소중한 공동체다. 종종 두 공동체의 행사 일정이 겹칠 때가 있다. 피치못할 경우가 많으면 결국 선택을 해야하지만, 일정을 조율할 여지가 있으면 차선을 선택하기보다 최선을 다하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는 좋은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으면, 인생의 변화무쌍함에 자주 실망하거나 인생의 진실을 자꾸만 거부하며 살게 된다. 뜻대로 되어지는 순간도 있지만,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또한 많은 게 인생이다.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인생의 불확실성 덕분에 예상 밖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평소에는 변화경영연구소 덕분에 기쁨을 누리며 살지만, 어제는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서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것 뿐이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배울 수 있다. 어제의 시간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어젯밤 내가 배운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부분에 대한 느낌으로 전체에 대한 해석을 해선 안 된다, 열 받을 때 기본적인 자기 컨트롤(건강지침)이 무너질 수 있다, 셋팅된 일정이라도 조율의 필요성이 생긴다면 변경을 위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감당한 수고가 항상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좋은 의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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