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류현진, 개츠비 그리고 피드백

카잔 2013. 6. 26. 21:20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끌려 오늘 하루만 써 보는 것 뿐이다. 아침에 류현진을 부러워했고 오후에는 개츠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내게 글쓰기를 배우는 이에게 이번 주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했다. 마음에 드는 하루였다.

 

1.

류현진은 6월 30일 7승에 재도전한다. 6승 이후 네 번의 도전이 있었지만 호투에도 불구하도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이번 맞상대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클리프 리'다. 리는 사이영 상을 수상한, 완벽에 가까운 제구력을 지닌 특급 좌완이다. 류가 한국에 있던 시절부터 존경하던 선수다. 나는 류가 부럽다. 존경하던 모델과 같은 무대에서 실력을 겨루는 류는 이제 나의 역할 모델이다. 마인드와 실력 면에서.

 

사실 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부터다. (아마도 2010년인 듯) 류의 강점 하나는 마인드의 훌륭함이다. 그는 언제나 안정적이고 느긋하다. 그리고 주도적이다. 그는 팀 동료를 탓하는 법이 없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LA에서도 여전하다. 동료들의 도움이 적이 승수가 적다는 말에 "시즌 하다보면 동료들 때문에 승리할 날이 분명히 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류. 종종 이렇게 팬들을 감동시킨다.

 

2.

지난 주에 <위대한 개츠비>를 관람했다. 개봉한 지가 오랜지라, 전국에서도 3D 상영관은 오직 한 곳, 이수역 앞에 있는 아트나인 뿐이었다. 홀로 조조영화를 보았다. 내게 개츠비는 위대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자마자 개츠비의 위대함에 대해 썼다. 하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개츠비의 위대함은 아이러니임을, 한쪽으로 편향된 위대함임을, 그러니 실제로는 위대함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러니에 대한 대목을 추가했다.

 

그의 위대함에 집중한 것은 나의 어떠한 기질을 보여 주었다. 오늘 추가한 대목은 결국 내 기질의 편향성을 보완한 셈이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분명 아이러니인데, 그것을 제대로 보여 준 글인 것 같아 뿌듯했다. 조르바 원고로 올릴 텐데, 이렇게 고쳐 써서 올릴 정도로 정성을 들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이번 원고는 시간을 묵힌 것과 귀찮다고 대충 써서 올리는 태도를 이겨낸 것이 도움이 됐다.

 

3.

오후에는 요즘 자주 가는 잠실 디초콜릿 카페에서 일했다. 어제도 두 번을 왔었다. 오후에 일하러 한 번, 저녁에 와우팀원과의 미팅을 위해 한 번. 저녁에는 그윽한 테라스의 분위기 덕분인지 손님이 많지만 오후에는 다소 한가하다. 가끔씩 꼬마 손님들을 대동한 아주머니들이 오시면 한가로움을 달아난다. 오늘이 그랬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느라 카페의 느긋한 분위기는 깨졌다. 하지만 업무의 집중도까지 깨진 것은 아니었다. 일하는 것, 재밌다.

 

4.

저녁에는 야구를 잠깐 보다가 글쓰기반 학생을 만났다. 글쓰기반에서는 학생이지만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이다. 그는 노력하는 선생이다. 과제를 꼬박꼬박 성실하게 해내어 선생을 기분좋게 하는 학생이다. 배운 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학(學)이야 쉽지, 습(習)은 귀찮고 어렵다. 그는 익히는 일에도 열심이다. 성실한 학생을 만난 것은 선생의 행운일까? 학생의 영향력일까? 둘 다 겠지.

 

글에 대한 전반적인 피드백과 함께 문장과 표현에 대한 다소 디테일한 피드백도 전했다. 모호한 표현과 불분명한 구절을 고쳤다. 접속사를 생략하기 위한 감각적인 요령도 알려 주었다. 그는 조금씩 좋은 글에 대한 감각을 익혀가고 있다. 글쓰기 원칙은 전할 수 있지만, 글쓰는 감각은 전달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류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개별적이고 디테딜한 피드백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할 수는 있다. 내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덧.

하루가 지났다. 사실 가장 기억나는 일은 적지 않았다.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각할 것이 많아서다. 친하게 지내는 분이 나와의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답답하셨나 보다. 왜 그리 카톡이나 (네이버) 밴드 확인을 안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단다. 그저 습관일 뿐인 걸까? 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면을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