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소크라테스는 다소 가혹했지만

카잔 2013. 6. 10. 18:15

 

종각에서 을지로를 향해 100m 남짓 걸으면 청계천을 만난다. 청계천로에서 좌회전하는 길을 따라 커피스미스, 커핀그루나루, 카페베네,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등의 카페가 늘어서 있다. 나는 단연 커피스미스가 마음에 든다. 2, 3층 창가에서 내다보이는 청계천 풍광이 멋지고, 커피스미스 고유의 모던한 인테리어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매월 종로에서 강연을 해서 종종 들른다.

 

어느 초여름 날, 커피스미스 3층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단상에 잠기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으로 넘어가는 오후라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3층까지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바람이 그네들의 미소마저 실어온 마냥 웃음소리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산새의 지저귐보다 기분 좋은 소리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하늘을 보았다. 빌딩과 부딪힌 햇빛은 산산조각, 빛의 방울방울이 되어 을지로를 감쌌다. 빛 방울을 머금은 청계천이 부드럽게 빛났다. 그 풍광을 감상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 아! 세상에 좋은 곳들이 많구나. 카페 하나에도 이렇게 행복이 깃들어 있구나. 사람들은 같은 장소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누구나 일상의 영역만 거닐며 살기 십상이다. 매일의 일상이 세상사의 전부인 줄 알고, 어디를 가나 집이나 다름없다는 매너리즘 사고방식에 빠져 산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충만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비결이다. 행복하고 재밌게 살자! 나를 기쁘게 만드는 곳을 자주 찾아가자.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도 하면서 소원과 의무가 조화되는 순간을 창조하자.

 

- 가고 싶은 곳으로 자주 나를 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이런 의문이 생겼다. 죽을 때까지 못다 쓸 만큼 많은 돈을 가진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내 서가엔 죽을 때까지 읽어도 못다 읽을 책이 꽂혔으니 책이 많은 사람의 삶은 알지만 부자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생각은 다시 방향을 틀었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돈이 많다는 것은 일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의미했다. 갑자기 부자들이 부러웠다. 많은 돈도 부럽지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이 더욱 부러웠다. 모든 부자가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자들 중 일부는 돈을 향한 탐욕을 채우느라 엄청난 시간을 일에 바칠 테니까. 나는 돈이 많았던 적이 없다. 돈을 벌면 책을 샀고, 조금 모였다 싶으면 여행을 떠났다. 책읽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여행은 나를 키운다. 되돌아보니, 내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자신감은 있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욕심에 메이지 않으려고 노력 덕분에 명성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부자의 삶을 궁금해한 질문은 지혜롭지 못했다. 다시 질문하자. 내게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그보다 많은 돈을 벌려고 할 때,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유사시를 대비한 비상자금과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 커피스미스가 마음에 든다. 내가 가본 매장은 가로수길, 석촌호수, 신천 그리고 청계천점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가로수길점은 2009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상을 수상했고, 매장도 예상보다 많았다. 2012년에 19개를 오픈함으로 본격적인 확장에 들어갔다. 청계천점이 2012년 12월에 생겼다. 2013년 6월에는 구미에만 인동점과 금오산점 2개 매장이 오픈 예정이다. 세상에는 잘 나가는 회사도 많지만 어려움을 겪거나 망하는 회사도 많다. 최근 남양유업은 매출이 급감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부침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변한다. 내가 즐겨 찾던 카페도 변했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한동안 그곳을 다니는 나는 역삼동 <카페데베르>를 5년 동안 매일같이 다녔다. 발걸음이 멈춰진 이유는 작은 변화 때문이었다. 널찍하던 테이블이 작은 것으로 바뀌었다. 자주 찾던 스타벅스에 한때 뜸했던 것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테이블 간격이 좁아서였다. 스타벅스는 다시 자주 찾는다. 홀로 편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인테리어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순 없다. 카페스미스 청계천점에서 내가 누린 행복이 그리워 찾는다 해도 나 같은 감동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카페 방문은 쉬워도 그때 내가 들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 내가 목격했던 햇살마저 연출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변화가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1) 세상 모든 것은 변하니 우리는 순간을 잡아 행복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2) 스스로를 혁신할 줄 아는 기업과 개인이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얻는다.

 

- 오늘은 6월 항쟁이 일어났던 날이다. 1987년 6월 10일에 벌어진 민주화 시위운동은 제5공화국의 종말을 불러왔고 민주화의 디딤돌을 놓았다. 십년 전만 해도, 나는 매년 5.18과 6월 항쟁을 기념했다. 이즈음이 되면 관련 서적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런 노력들이내 안에 약간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만들어주었다. 스무 살 무렵에는 VHS 비디오 가게에서 <제5공화국> 등의 다큐멘터리를 대여해서 시청했다. 6월 항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상계동 철거 주민들이 시위자들을 돕는 모습과 명동성당을 향해 진격하는 넥타이 부대들의 행진 시위였다. 지금도 당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한다. 한때 나는 사회과학 서적을 거듭 읽으며 지식인을 추구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과 지식전문가와를 구분했다. 지식전문가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복종한다. 지식인은 양심과 시대의식을 따른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면, 나치의 생체실험에 참여했던 의사는 지식전문가다. 날 때부터 지식인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지식인에서 지식전문가로 변절할 수도 있다. 변절인지 사상의 발전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김지하 시인을 두고서는 변절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 읽고 조사했을 터인데, 그냥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한다.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나도 많이 변했다. 6월 항쟁을 기념은커녕 기억조차 못했다. 오늘이 6월 항쟁 기념일임을,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풍광을 앞에 두고 삶의 즐거움을 생각하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기사를 보았던 것.

 

모든 사람들이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최소한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내게 고귀한 지식은 중요하다. 양심적이기보다는 지적 허영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적 호기심일 것이다. "인생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의식 있고 깨어있는 삶을 위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역사의식을 고취할 만한 기념일은 플래너에 적어두어야겠다. 생각했을 때 바로 실행하면 좋겠지만, 곧 강연이 시작되니 오늘은 시간이 없다. 이놈의 시간이 없다는 말, 핑계 같아 왠지 부끄러워진다. 늦게나마, 6월 항쟁 국민대회 선언문을 직접 타이핑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달랜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는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 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 장정을 시작한다."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의 단상,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 생각을 만나고, 나다운 삶을 꿈꾸고, 잊고 살았던 가치를 상기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다중지능 이론이나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알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성찰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 지능, 공간 지능, 수리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성찰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은 가혹하지만 성찰이 부재한 삶은 충분하지 않다. 성찰이 깃든 삶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