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라니!

카잔 2013. 7. 21. 22:47

 

 

신간의 제목이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다. 마지막이라니! 불만스러운 제목이다. 아니 열받는다. 야밤에 인터넷 서점을 잠시 들렀다가 기분이 불쾌해졌다. 책은 선생님이 생전에 14명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묶었다. 수신인에게 편지를 쓰실 때에는 그것이 모두 마지막편지가 아니었다. 오직 단 한 편의 편지만을 '마지막'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제목은 그 편지를 대표한 것인가. 이 책은 그 편지를 담았는가.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안다. 나는 지금 트집을 잡고 있음을. 아무 잘못도 없는 행인을 보고 난데없이 짖어대는 개마냥 엉뚱한 트집이다. '마지막'은 슬픈 단어다. 마지막이 진짜라면 그것은 '다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 마지막은 자극적인 단어다. 마지막엔 간절해지고 진실해지기에 사람들은 마지막 말과 행동을 궁금해한다. 마지막은 깨달음과 닿은 단어다. 쌓이고 깊어져 깨달음에 닿으니까. 마지막의 진위 여부와 관련없이, 제목은 단순하지만 매력적이다.

 

제목에 대한 본심을 고백하고 나니, 짜증과 트집은 결국 내 감정의 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열매가 툭 떨어지려면 뿌리에서부터 나고 자라 꽃을 피우고 과실을 맺어야 한다. 하나의 감정이 툭 하고 표현되는 것 역시도 그 태생과 자람 그리고 결실이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결실이든, 긍정적인 결실이든 인과의 흐름은 우주의 원칙이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의 떠남을 받아들였다가 부정했다가 화를 냈다가 허망해하다가 인정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난 구본형의 비판적 추종자였다. 선생님의 훌륭한 점을 찬탄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비판은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이고, 누군가를 본받고 따르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비판 정신이라고 믿었다. 나는 믿는 대로 말했다. 선생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단점이 있는 곳에 제자의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약점이 보인다면 그 약점을 보완함으로 리더를 도우라! 청년 시절 교회에서 배운 메시지였다.

 

나처럼 시니컬한 제자가 있는가 하면, (내가 보기엔 항상) 선생님을 찬양하는 제자도 있다. 이것은 기질의 문제지, 선생님을 향한 애정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찬양론자 중에는 사건을 벗어나면 신속하게 자신의 새로운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 사건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같다. 현장에서 열광적으로 추종하든, 뒷자리에서 비판적으로 추종하든, 추종의 방식은 다르지만 사모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머지않아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를 읽을 것이다. '마지막'이어서가 아니라, '구본형'이이서다. (내가 보기엔, 이럴 때는 나도 '비판적'을 뗀 그저 추종자다.) '처음'을 읽었으니 '마지막'도 읽어야지, 하는 당위의 마음도 있다. (사실 선생님의 마지막 저서는 아니다. 홈페이지의 선생님 칼럼을 엮은 책도 출간될테니.) 책을 받아들면 어떤 기분일까? 주문하려는데 그 생각부터 든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속 선생님이 웃으신다. 그런데 난 눈물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