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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소설을 읽는 법

카잔 2013. 10. 19. 09:53

 

 

1.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유럽 교양소설의 원형이다. 모레티가 지적했듯이, 고전 서사시의 주인공들은 모두 성인이었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딧세우스를 보라.) 반면 교양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과 젊은이들다. 교양 소설의 주제는 젊은 주인공들의 모험, 갈등, 성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교양소설을 "주인공이 그 시대의 문화적·인간적 환경 속에서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는 사이에 자기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를테면 자신을 내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라 정의했다. 그래서 성장소설이라도도 한다.

 

한마디로, 교양소설은 젊은이가 인생과 사회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교양소설은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 선두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가 있다. 켈러의 『초록의 하인리히』,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카퍼필드』,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등이 대표적 교양소설이다.

 

 

2.

"삶이여, 오라, 나는 이제 백만 번씩이라도 경험의 현실과 만나러,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종족의 의식을 벼려 내러 간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마지막 구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의 한 구절이 더 남았긴 하다.

 

"고대의 아버지여, 고대의 장인이여,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도와주소서."

 

소설의 주인공은 '스티븐 디덜러스'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이면서 『율리시즈』에도 등장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분신이니 기억해둘 만한 이름이다.) 스티븐은 도움을 구하는 대상에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은 청년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앙이 시들었기 때문이다. 섹스와 신앙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욕망이었다. 때로는 욕망 자체에, 때로는 욕망보다는 경험에 굶주렸던 그였다.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인 만큼, 소설 속의 스티븐은 현실 속의 제임스를 닮았다. (스티븐은 아일랜드에 남았지만, 제임스는 아일랜드를 떠난 점은 다르다. 또 다른 아일랜드의 위대한 작가인 시인 예이츠가 아일랜드의 문학인으로 남은 반면, 제임스는 유럽인이었다.) 제임스 조이스를 궁금히 여긴다면, 재밌는 소설이다.

 

성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을 만한 소설이다. 육체의 성장이 아닌 영혼과 의식의 성장이라면 말이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실용서에서는 얻지 못하는 유익이 있어서다. 시간관리, 리더십, 의사소통 스킬 등 겉으로 드러나는 실제적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에는 실용서(자기계발서)가 좋지만, 영혼의 갈등, 의식의 성장에 대해 이해하는 데에는 위대한 작가들의 교양소설이 제격이다.

 

3.

소설의 막바지에서, 친구 크랜리의 물음에 스티븐 디덜러스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어떤 일은 하고 싶지 않은지 물었어. 이제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과 하지 않으려는 일을 말해 줄께. 나는 내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기지는 않을 거야, 그게 내 집이든, 조국이든, 교회든. 그리고 난 어떤 삶이나 예술의 양식으로 가능한 한 자유롭게, 가능한 한 온전하게 나 자신을 표현하라고 할 거야.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허락한 침묵, 망명, 잔꾀라는 무기만을 사용하면서 말이야."

 

성장소설에서 제시하는 모든 가치를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의 소설이라고 해도 맹목적으로 추종할 순 없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결국 독자에게는 비판의식과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이성적 사고(비판)와 옳다고 판단한 것을 힘써 실천해 보는 노력(실험정신)은 독자를 고양시킨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자신이 읽은 것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비판의식을 발휘하기 전, 무엇보다 작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공감과 감수성이 중요하다. 공감적 이해력은 탁월한 비판의 기본기다. 이해하고 나면, 또 묻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 교훈, 배움을 주는가?

 

이것은 해석이다. 해석은 작가의 의도에 "왜?"라고 묻는 것이다. 작가는 왜 그것을 말했는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해석이다. 해석은 사실에 기반한 논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지, 자신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단계가 아니다. 해석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서 평가 단계에 이른다.

 

나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자신의 가치관에 기반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평가가 일치할 순 없다.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졌고, 가치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석은 논리에 의해, 평가는 가치관에 의해 좌우된다. 해석은 지성을 필요로 하고, 평가는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교양소설은 스토리 자체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위대한 작가들의 대부분이 스토리에 능하지만, 그들이 스토리의 재미만을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교양소설을 읽음으로 얻는 최고의 유익은 저들의 성장 과정에 주목하여 자신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요, 근대 유럽인들이 말한 교양이었다.

 

"교양소설에서의 교양 ‘Bildung’은 형성 ‘bilden’이라는 동사를 명사화한 것으로, 자기형성을 의미한다. 교양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거나 기성사회의 질서나 규범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습으로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