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꿈, 호전된 친구 & 강의력

카잔 2013. 10. 30. 08:47

 

1.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는 두 번의 을 꾸었다. 이틀 전 월요일 새벽에는 두꺼비가 나오는 꿈이었다. 내가 손으로 건드렸나, 아니면 그것이 잠든 내 얼굴에 닿았었나, 아무튼 나는 봉투 하나를 건드리게나 닿게 되었고 화들짝 놀란 나는 그 봉투를 밀쳐냈다. 봉투 안에서는 작은 수박만한 엄청난 크기의 두꺼비가 튀어나왔고 나는 몹시 놀랐다. 놀라움의 일부는 약간의 두려움이었다. 소스라치면서 무언가를 들고 두꺼비를 한 번 밀쳐내다가 깼다.

 

오늘 새벽에는 친구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고 신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꿈을 꾸었다. 덤덤한 아내의 말투도, 갑자기 사망했다는 사실도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꿈이라서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꿈 속의 나는 현실을 살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신기한 꿈이었다. 액자형식의 꿈이라고 할까. 꿈 속인데도 나는 '이건 꿈일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믿지 말자고, 녀석은 다시 일어날 거라고, 말하다가 잠을 깼다. 

 

융은 평생 다른 사람들의 꿈을 분석했지만 자신의 꿈을 공개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무의식의 표현이 두려웠을까? 자기 연출에 신경을 썼기 때문일까? 아직 그를 잘 모르니 그 원인은도 모를 일이다. 성격심리학자인 융도,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도 무의식을 찾아가는 수단으로서 꿈을 강조했다. 저 꿈들도 내 안의 무의식, 다시 말해 두려움이나 희망 등을 보여주는 걸까? 궁금한 일이지만, 아직 무의식까지 공부할 여력은 없다.

 

추천도서 하나. 라이너 풍크의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에리히 프롬의 제자가 쓴 책이다. '나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자기분석 여행'이라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말해 준다. 내 욕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잠재의식과 만나는 4가지 방법 등의 내용이 흥미롭다. (4가지 방법은 꿈, 자발적 연상, 실수, 전이를 말한다.) 나는 스승으로서의 에리히 프롬이 보여준 모습에 감동했다. 꿈에 대한 서술은 아주 일부분이지만, 꿈 분석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걸출한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에 대해 다양한 입문적 지식을 쌓는 게 낫다는 판단에 추천한 책이다.   

 

2.

꿈에 나왔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확하게는 아내로부터 온 전화다. 하지만 곧 친구를 바꿔주었다. 수술 후의 첫 통화다.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오늘은 일정이 빠듯한 날이다. 11시 30분 강연, 3시 미팅, 7시 30분 와우시음회가 있다. 그래서 어제 병원에서 나오며 못 올 수도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했었다. 하지만 가야겠다. 많이 나았다는 친구의 말이 반갑기도 하고, 좋아진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10시 남짓한 시각에 도착하면 30분 정도는 있을 수 있겠다. 고통이 많이 경감되었나 보다. 내일 즈음엔 얘기를 많이 나눌 수도 있겠다.

 

3.

한국시리즈 5차전은 아주 재밌는 경기였다. 강연을 하느라 생중계를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정이라면 한국시리즈가 있는 날로 강연을 잡지는 않았을 텐데, 어찌할 수가 없는 강연이었다. 허나 강연은 한국시리즈만큼 재밌었다. 강사의 재미보다는 청중의 재미가 더욱 중요하지만, 강사가 자신의 강연을 즐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자기 일에 빠져드는 것이고, 청중도 느끼었다면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본 셈이니까.

 

어제 주제는 '강의력'이었는데, 이 주제의 강의는 드문 것 같다. 희소성이 있다는 말인데, 내 완벽주의와 잘 타협한다면 집필을 해 볼 수도 있겠다. 허나 '아직은 아니야'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한다. 와우들에게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스스로를 완벽주의로 잠재우고 있으니! 참나. 허나, 탁월한 작품을 써내고 싶은 열망을 마냥 내던져 버릴 수도 없다.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시작은 할 수 있다는 것! 탁월함은 준비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직접 부딪치며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탄생하니까.